<<금지된 정열>> 속 <도덕적 교훈>
NGA 글로컬스터디즈팀에서 진행 중인 <라틴아메리카 문학 읽기>에서 읽고 있는 책, <<금지된 정열>>(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정승희 옮김, 문학동네, 2011)은 정말 주옥같은 단편들이 수두룩하니 들어 있다. 오늘은 그 중 <도덕적 교훈>에 나오는 내용을 옮겨 적어본다.
「도덕적 교훈」 Una lección moral. 내 적들이 아직 나를 파멸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을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내 도덕을 확립하는 데 큰 진전이 있었다. 내게 적이 있을 리 없다고 아주 깊이 확신했기 때문에 그간 나는 마치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왔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적의 기운을 빼왔다. (마흔 살이라는 나이에도) 젊어 보이는 내 외모가 다른 사람들의 질투를 유발했을 수도 있고, 잘난 척하지 않는 나의 태도가 오히려 건방진 우월감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바보들을 동정했고, 그 사람들이 무지에서 벗어나도록 독려하기 보다는 내 지식을 감추려함으로써 그들의 경멸을 자초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아부하지 않았고, 덕분에 아부를 받고 우쭐거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원한을 샀다. 혜택이나 명성, 권력을 얻기 위해 경쟁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셈이었다. 나는 공격을 비난하지 않으려는 나의 태도가 최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나를 해치려고 공격하면 나는 즉각 관대한 태도로 내가 전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에게 우정 어린 악수를 건네곤 했다. 이런 행동은 당연히 내 적들에게 당혹감과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나는 도덕적인 혼란을 느끼며 내겐 ‘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누가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내게 어떤 해를 입히는 데 성공하면 나는 그와 나 자신에게 그 상처를 숨겼고, 그런 까닭에 우리의 표면적인 우정은 지속될 수 있었으며, 내게 해를 입힌 사람은 자신의 공격이 성공했다는 것을 영원히 모른 채 지나갔다. 그래서 그는 첫 번째 공격이 불완전했다고 확신하며 반복해서 공격해야 한다고 느꼈다. 고백하자면 나의 이런 태도는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느 오래된 법칙에 의하면 적은 서로를 알아야 하고, 때리면 반응해야 하며, 쌍방이 공격해야 한다. 반면 항상 미소를 띠고 세심함과 신뢰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들의 원한을 샀다. 사실 품위는 좀 떨어지더라도 내가 그들의 적의와 그들이 끼친 피해를 인정했다면 그들은 관대한 태도로 나를 용서하고 심지어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약하다는 것을 고려해 더는 공격하지 않거나, 심지어 나를 도와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공격할 때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아무도 없을 때 상처를 감추고 지혈했기 때문에 다음날 적은 자신의 행동이 남긴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적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자신의 공격이 별 소용이 없었다는 걸 인정함으로써 적은 허영심에 상처를 입고,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어느 날 밤 명료한 한 순간, 나는 내가 애정이라는 가면을 쓴 친구들의 질투를 받아왔다는 것, 내가 배신자에게 입 맞추고, 질투심 많은 자의 경계심을 신중ㅅ함이라고 치켜세우며 칭송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들이 용서받고 싶어하지 않는데도 내가 용서하는 것은 그들을 모욕하는 일이며, 적들의 은밀한 욕망을 짓밟는 일이라는 사실./ 적들이 나를 공격하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을 용서함으로써 나는 그들의 행동 목적을 상실하게 했고, 그들 행동의 의미를 이중으로 퇴색하게 만들었다. 즉, 한편으로는 그들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진심으로 후회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버린 것이다. 내 행동으로 인해 그들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믿게 되었고, 내게 용서를 구하는 대신 공격을 되풀이해야 했다.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을 용서받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없다. 그리고 그게 내가 나의 적들에게 한 일이다.(14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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