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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겨울 독일 휴가 #3

hongsili님의 [2019 겨울 독일 휴가 ] 에 관련된 글.

 

# Day4

 

아침 챙겨 먹고 뉘른베르크 재판소. 날씨가 매우 을씨년스러움 ㅡ.ㅡ
내가 기억하는 뉘른베르크는 의학윤리 관련 강좌에 단골로 등장하는 그 유명한 뉘른베르크 재판, 그리고 미국 살 때 보았던 이 재판을 다룬 영화... 영화로 처음 접할 때 의외로 재판정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에 놀랐던 기억이 남.. 너무 당연히 나치가 잘못한 건데 무슨 재판까지 하나..  이런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던 듯..
한국에서 친일부역자에 대한 처단이나 일제의 만행에 대한 공식적 단죄의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후 독재정권의 쿠데타 음모들 마저도 얼렁뚱땅 넘어갔던 역사, 심지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쌍소리마저 나오는 마당에 사실 재판이라는 공식 절차를 거쳐 전쟁범죄를 처벌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음...   실제로 여기에도 도쿄 전범 재판 일부 사료를 전시해놓았는데 큰 대조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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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들은 시켜서 했다 뿐 아니라, 이것은 전승국이 주도하는 편파적 재판임을 주장하거나, 혹은 당시 연합군의 일부인 소비에트 군대의 학살 만행을 언급하며 재판의 정당성 자체를 훼손하려 했음
혐의는 네 가지를 다루었는데, 1) 전쟁 모의 참여, 2) 실제 전쟁 실행, 3) 전쟁 범죄 연루, 4) 반인륜 범죄 연루.. 그런데 4가지 혐의가 당연히 셋트로 갈 것 같지만 의외로 한 두 가지만 인정된 경우가  있고 형량도 생각보다 낮았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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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의 보존 뿐 아니라 재판을 둘러싼 세계 정세와 반응에 대해 많은 자료들을 빼곡하게 모아두었는데, 뜻밖에 관람객이 많아서 놀람. 전시관에는 놀랍게도 독일어만 써 있음 ㅋㅋㅋ 그래서 무료로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주기는 하는데, 음성 재현 같은 거는 또 잘 안 되어 있음.
내 평생 다녀본 전시관 중에 글씨가 제일 많음.. 야 이럴 거면 그냥 책을 걸어놔라.... 관람객들이 그거 다 읽거나 듣고 지나가려면 시간이 엄청 소요되어서, 동선 정체가 엄청 심하고 작은 전시관인데도 한참이나 걸려서 관람을 마침..

 

점심에 찾아간 그리스 식당은 동네 맛집... 진짜 사람도 많고, 음식도 맛남 ㅋ 달콤하고 부드러운 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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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먹고 나치전당대회장으로 이동. 나치식 경례를 연상시키는 돌출 부위가 인상적인 어두운 건물..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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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유독 사랑했다는 도시 뉘른베르크, 왜일까 했더니만 제3 독일 제국을 열망했던 이 미친놈이 과거 독일제국의 영화가 남아 있는 곳을 선택한 거였음.  우리는 독일제국의 전통 계승자라는 것이지..
와, 여기는 또 왜 일케 글씨가 많아 ㅠㅠ 진짜 사진 하나에 글씨 한 바닥... 이것도 오디오 가이드 들으면서 관람하는데 그 분량이 장난 아님.


나치들이 선전하려고 워낙 출판/사진 자료들을 많이 남겨놓은지라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었음. 히틀러는 경외의 대상일 뿐 아니라 아이돌 정치인 ㅡ.ㅡ  정말로 미스테리한 것이... 아니  괴테와 실러의 나라, 헤겔과 하이데거, 쇼펜하우어의 나라 아님? 그렇게 합리적이고 토론 좋아하는 인간들이 왜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른 게야.. 저  미친 듯한 피버를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움...  책을 막 불태우고 히틀러에 미처 열광하고 굿즈 만들어 보급하고... 인종 간 위계 분류표는 또 왜 이렇게 디테일한 거야..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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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처럼 지어진 극장과, 박물관 바깥의 기념 공원의 위압적 조형물에 진짜 소름이 끼쳤음.. 이 넓은 곳을 가득 채운 열광의 함성을 생각하면 정말 .......
심지어 1층에는 최근 벌어진 독일 내에서의 인종주의 범죄 희생을 기억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음. 아니 이렇게 역사 교육을 해도 여전히 부족한 거였나 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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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성의 취약함에 대한 끝모를 회의와 함께 숙소로 돌아옴. 중간에 동네 마켓에 들러 정육코너 아줌마 설명에 따라 맛난 소세지 구입하고 버섯과 함께 구워서 샐러드랑 맥주 파티..
endless 주지육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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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겨울 독일 휴가 #2

hongsili님의 [2019 겨울 독일 휴가 ] 에 관련된 글.

 

# Day3


아침 요거트랑 바나나 먹고 시내 구경 나섬. 우선 아점 먹으러 케밥 (여기서는 '되너'라고 부름) 맛집 찾아갔는데 오호 통재라.. 휴일이네. 급하게 검색해서 식당 찾아갔는데 가보니 의외로 핫플레이스..
점심에 맛난 맥주와 소세지...  아니 여기 사람들 1인 1학센 먹고 있음.. 이게 뭔 일이래 ㅋ
팥수수님은 화장실 다녀와 어찌나 해맑은 미소를 짓는지 오래된 친구라도 만났나 했더니 남자화장실 잘못 다녀와서 혼비백산한 표정이래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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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밥 먹고 카이저부르그 성 구경. 여기 엄청 유명하다는데 처음 알았음. 내려다보니 풍광은 아름다운데, 뭐랄까 클스마스 마켓 인파에 허거덕.... 광화문 집회장도 아니고 이게 뭔 일이야...  이렇게 사람도 많은데 애기 유모차에 강아지에.. 와 진짜 강하게 키우는구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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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 내려와 독일 내에서 가장 크다는 게르만 박물관 구경. 세계인권선언을 모티브로 한 기념 조형물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음. 너무 커서 어찌 봐야하나 막막한데 다행히 도슨트 시간 맞아서 요약 강의 들음. 분명 뉘른베르크가 엄청난 폭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찌 이리도 멀쩡한가 했더니만, 폭격이 임박하기 전에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며 중요한 문화재들을 모두 떼어내서 맥주 저장고나 동굴 등에  고이 숨겨놨다가 다시 가져와서 조립했다 함..   으레 6월 25일 새벽에 예고도 없이 남침을 받았다는 서사에 익숙해진 한국인에게는 전쟁 몇 달 전에 대비해서 문화재를 숨겼다는 개념 자체가 참 적응이 안 됨..

심지어 주민들이 피난 갈 때 막 들고 가기도 했다는게... 사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에도 비슷한 설정이 나오는데.. 그러고 보면 세계대전이 마치 멀리서 폭풍우가 다가오듯이 오랜 시간에 걸쳐 유럽 전역에 천천히 가까워진다는 것이 다시금 실감...  
그리고 약간 웃긴 건, 이 동네 뒤러의 고향, 제자가 유명하면 선생도 각광을 받는다 ㅋㅋ  심지어 교회에도 뒤러와 뒤러 선생님 이야기가 같이 등장함... 뒤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장이가 되지 않고 미술가가 되었는데, 역시 부모 말 거역하는 자들이 큰 인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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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따뜻한 커피 한 잔 하고 다시 저녁이 되어 크리스마스마켓으로 ㅋㅋㅋ 따끈한 글뤼바인 한잔 먹고 잔 득템해서 기분 좋은 것도 잠시.. 아우 진짜 사람 너무 많아.. 죽겠다고...
내가 생각한 크리스마켓 이미지와 너무 다르잖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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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소시지에 감자떡 익혀서 저녁 만찬...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지역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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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겨울 독일 휴가 #1

 

# Day 0

 

정이 있을 때 한 번 가봐야겠다는 결심 실현..

출발 전에 보고서 마감 때문에 미친듯이 바빴음. 정말 죽을 것 같았음. 죽지 못해 맡았던 @@ 과제.. 아오...

아침에 서둘러 짐짜고 엄마네 도착해보니 두 여인네가 산더미 같은 반찬을 쌓아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음. 정이 엄마 볶음김치, 여수 갓김치, 김장김치, 자리젓, 인절미, 어간장에 매실청까지 ㅋㅋㅋ 나 정말 미치는 줄알았네. 울 엄마 질세라 장조림에 멸치볶음 기타 등등... 이미 나도 콩비지에 된장찌게 양념에 떡볶이 떡과 양념...  내 짐만 해도 한 무더기...

그동안 반찬을 우편으로 전달하기 어려웠던지라 인편에 보내는 마음 십분 이해하지만..  와..  
반만 싸달라는 요구에 두 냥반 머리에 한 짐 지고 얼릉 동네 정육점에 가서 진공포장해오심. 억지로 우겨 넣고 공항으로 고고... 시간이 촉박해서 정이 엄마가 데려다주심
짐 무게 달아보니 23kg 한도에 22.8 킬로 찍어서 깜놀.. 추가 요금 낼까봐 오금이 저렸음 ㅋ

내 평생 여행 짐 중에 가장 헤비....

 

# Day 1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정이 만남.. 너무너무 반가움
초딩처럼 열쇠 꾸러미 목에 걸고 어벙벙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셀카 ㅋㅋㅋ
이미 공항에서 상봉하는 다른 가족들 보며 눈물바람 찍고, 정신 차리자며 유투브로 추노 보면서 마음 달래고 있었다 함 ㅋㅋ


카셀 깡 시골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음 ㅋㅋㅋ 나는 막 기차 역에 내리면 목초지에 소가 돌아다니고 있을 줄 알았단 말야..


시내버스 타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 정이네 집 도착...  얼릉 씻고, 반찬 소분하고, 가져온 볶음김치랑 같이 두부 김치 만들어서 환영의 맥주 1잔..
언니들 온다고 배낭에다 맥주 열두 병을 짊어지고 왔다고 ㅋㅋㅋ  학교 친구로부터 에어매트리스도 빌려 놓음
나름 집안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셀프케어를 잘 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

 

# Day2

아침에 비지찌개 끓여 정이 감동 한 스푼 먹이고 ㅋㅋㅋ 기차 타고 뉘른베르그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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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사물함에 짐 넣어두고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 나감. 독일 내 가장 큰 클스마스 마켓이라는데 사람이 정말 북적북적...  근데 부스에 장식해놓은 인형들이 왜 이리 하나같이 처키 같은지 무서워 죽겠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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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서베이 마치고 장봐서 숙소로 이동. 숙소 열쇠 보관방법 알려주는 이메일 놓쳐가지고 잠시 대혼란,, 다행히 우연찮게 숙소 관리인 마주쳐서 도움받아 겨우 입성.. 집은 꽤나 괜찮음
짐 대강 풀어놓고 동네 맛집 가서 정통 슈니첼에 돼지어깨 버전 학센과 함께 맥주..
야 진짜 독일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음. 정이가 독어로 척척 주문해주는 덕택에 정말 신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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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마지막 책읽기

사실 밀린 책 메모가 에버노트 한 가득이지만, 저걸 언제 다 옮겨 정리하냐..

우선 눈에 밟히는 마지막 메모이자 최근 메모

 

고통에 반대하며 - 타자를 향한 시선
고통에 반대하며 - 타자를 향한 시선
프리모 레비
북인더갭, 2016

 

 


부제이자 원래 제목은 '타자를 향한 시선'임.
지난 연말, 을씨년스러운 독일에서 뉘렌베르크의 전범 재판소와 나치 전당대회 장소, 그리고 바이마르 부켄발트의 수용소를 오가는 길에 읽는 프리모 레비의 글이란...

이미 책을 골라 가방에 넣는 순간부터 무거움과 기대가 한가득....


이미 다 지난 후, 말하자면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주기율표를 거치며 격정과 무거움을 다 떠나보낸 후 햇살이 잘 드는 한적한 이탈리아 토리노 (사실은 가본적 없는) 어느 모퉁이  오래된 카페 안에 앉아 할배랑 하릴 없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


아주 조금씩 살짝 묻어나는 작가 인생의 바로 그 시기의 고통의 경험이 묻어나되,
내가 아니라 다른 인간, 동물, 식물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소소한 관찰과 생을 향한 연대의 작은 서사들로 넘처남. 눈물을 왈칵 쏟을 법한 구절들은 없지만 (사실 할배 이런거 싫어함 ㅋㅋ) 마음이 먹먹해옴은 어쩔 수 없음.

" 동물들은 진정 존중받아야 한다. 동물들이 선하다거나 우리에게 유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새겨진 그리고 모든 종교와 모든 제정법이 인정하는 규칙이 우리 스스로는 물론, 고통을 감지할 수 있는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고통을 야기하지 말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가사의하다, 우리의 고통만 빼고' 평신도가 확신을 갖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우선은 이것부터다. 고통 (그리고 고통을 가하는것)은 스스로에게나 타자에게 더 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상받아아야만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이 책으로 프리모 레비를 처음 접했다면 이게 다 뭐람? 했을 것 같음... 표면 그대로라면 이토록 싱겁고 따분한 이야기가 없어보임 ㅡ.ㅡ  이 책은 레비 할배의 연대기에 익숙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
옆에 두고 가끔씩 꺼내읽어야 하는 이야기들이라고나 할까...

아득함 속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비정한 이과 작가 할배 같으니라구 ㅋㅋ
 

그동안의 작업에서와 달리 글쓰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함...너무 구구절절 공감!

".. 글쓰기는 진짜 직업이 아니다. 아니, 적어도 내 견해로는 직업이어서는 안 된다. 글쓰기는 창조적인 활동이므로 일정이나 마감, 고객과 상사에 대한 책무 등을 견디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생산', 아니 오히려 변형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독자가 될 '고객'이 이해하기 쉽고 좋아할 만한 형태로 변형한다. 그러므로 경험은 원료다. 원료가 부족한 작가는 헛되이 일하는 것과 같다..."

하도 마감에 쫓기는 글들만 많이 써대서 창의력과 재료가 모두 고갈된 나를 알아보고 쓴 구절 같다구 ㅜ.ㅜ

명료하고 '독자에게' 책임감 있는 글쓰기 강조한 것도 너무 와닿음

"완벽하게 명료한 글쓰기가 완전하게 의식하는 작가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에고와 이드, 정신과 육체, 더 나아가 핵산, 전통, 호르몬, 과거와 현재의 경험과 트라우마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도플갱어를, 말이 없고 정체도 불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행동에 함께 책임을 지며, 우리가 쓰는 모든 글에도 함께 책임을 지는 형제를 데려가야 하는 운명이다... 사실 나는 '그를 위해' 쓴다. 비평가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독자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는 부당하게 굴욕감을 느낄 것이고, 나는 계약 위반이라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하지만 통곡은 과도한 수단이다. 눈물로는 개인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나, 언어로 본다면 무력하고 투박할 따름이다. 정의상 언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무언의 감정 표출은 명확한 언어적 표현이 아니며, 소음은 말소리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형언할 수없는 것, 실재하지 않는 것, 동물 울음소리의 한계에서 울리는' 텍스트들을 찬사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다...... 우리들 산 자는 고독하지 않으므로 마치 우리가 고독한 것처럼 써서는 안된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책임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대해 한 단어 한 단어 책임져야 하고, 모든 단어가 반드시 제 목표에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

나도 감정과잉과 자기연민 극도로 싫어하지...ㅋ

그런데..... 살아있는 한 우리는 책임이 있다고 쓴 할배는 스스로의 의지로 세상을 떠났고... 사후에 이런 글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어쩐지 스스로의 삶을 종결시킬 권리와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영감님과 내가 공유하는 글쓰기 비법 한 가지.. '서랍속 휴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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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맞이한 새해

흔히 1월 첫 주면 작심삼일이라도 실천하기 위해 대부분의 이들이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려고 애쓰는 기간이건만....  어우 아침에 숙취로 몸부림치면서 이게 무슨 괴이한 새해맞이인가 인생에 회의가.....

그저께 부산 광안리 해변에는 오가는 사람이 열 명도 안 되고

어제 저녁 강남에도 초저녁부터 술 먹는 사람 우리 일행밖에 없더라구... 

상식에 너무 벗어나잖아 ㅡ.ㅡ

 

1월 2일 아침부터 울산에 내려가 예상치 못한 뺑뺑이에 인터뷰 두 건 진행하고 전복삼계탕 주지육림.

저녁 늦게 부산으로 이동해서 반가운 얼굴 역학박사 3명과 조우하여 쓸데없이 HAV 걱정하며 텅빈 광안리 조개구이 집과 맥주집에서 주지육림.

어제 아침에는 고기듬뿍 설렁탕으로 해장하고 초저녁에 다시 강남에서 주지육림 ..

그나마 희석식 소주 안 마셔서 예후가 양호한 편.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는 지난 이틀동안, 한 달 아저씨 쿼터를 다 채웠다 ㅋㅋ

모두들 대한민국 상위 1%에 해당할만큼 훌륭한 아저씨들이었고, 다들 너무 반갑고 너무 즐거웠지만 아저씨는 아저씨 ...  뭐랄까 아저씨 디톡스가 필요한 느낌적 느낌...  

이상하지, 이제는 이 아저씨들이랑 여자 친구들이랑 성별 구분도 잘 안가는데 ㅋㅋㅋ

 

하여간 올해는 결심한 대로 생활글, 작은 글 좀 많이 써보려고 포스팅하지만,

거창한 새해 계획을 늘어놓을줄 알았지 숙취의 괴로움을 쓰게 될 줄 이틀 전만 해도 상상 못했다구.

그래도 작년처럼 정신줄 놓고 살면서 인생책에 빈 페이지가 남겨두지는 말자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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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문제인가

세상에나

블로그 포스팅한게 1년이 넘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

에버노트에 메모해둔게 한 웅큼이란 말야...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일의 효율성이 떨어진 것인가, 일의 절대량이 많아진 것인가,

아니면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문무를 겸비하여 오만가지 잡다한 일을 하려니 정신이 다 흐트러진 건가..

말발굽에 거센 먼지를 일으키며 바로 뒷꿈치까지 추격해오는 원고 추노꾼들, 각종 회의 추노꾼들 때문에 심장마비 일어날 지경... 매일매일이 너무 쫄깃하다구 ㅋㅋㅋㅋ 정신줄 놓게 생겼음... 확 놔버릴까???

prefrontal cortex의 인지자원 곳간이 텅텅 비기 일보직전...

어쨌든 겨울 휴가 전까지는 어찌 해볼 도리도 없네 그려...  이럴 때마다 머리깎고 절에 들어갈까 생각도 들지만, 고기 못먹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새벽 예불...

그래 새벽예불보다는 추노꾼들에게 쫓기며 인생 쫄깃함 맛보는게 낫다는 생각으로 마음 부여잡고 일단 고고...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유작 Hunter of stories 로 틈틈이 부동의 평정심을 보충해가며, 겨울휴가 전까지....

 

흥겨워 쓰는 블로그 포스팅도 못하고 맨날 추노꾼들에게 잡혀서 글쓰려니 인생 재미가 떨어진다고..

얼릉 돌아올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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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에서 외계인까지...

두꺼운 Sapolsky 책이랑 Sagan 할배 책 메모 정리하다가 나머지 한글 책들까지 밀려서 일단 중간 정산... 

 

# 삼체 1, 2부 (류츠신)

 

삼체
삼체
류츠신
단숨, 2013
삼체 : 2부 암흑의 숲
삼체 :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단숨, 2016

 

오오오 훌륭하다. 과연 휴고상에 걸맞는구나...

주로 미국 SF 읽다가 한국작가도 아닌 중국작가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뭐랄까 도덕경 읽었을 때 딱 그 느낌... 서양철학사 읽을 때와는 달리 처음 읽는데도 너무 낯익고 다 이해되는 그 느낌이 들었음.
중국 근현대사 배경도 그렇고 사용된 한자어 단어들, 예컨대 지자, 면벽자, 파벽자 이런 거 너무 머리에 쏙쏙 들어옴


거짓말과 권모술수를 시연할 수 없는 삼체인들에게 던져진 문화적 과제가 삼국지연의라니 ㅋㅋ 뭔지 너무 알겠잖아 ㅋㅋㅋ

이렇게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해서 촘촘하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토리를 직조해내는 능력에 진짜 깜놀했네

의도적 오마주인건지, 거대한 전제라서 피해갈 수 없었던 소개인 건지,
우주사회학 개념은 아시모프 할배의 파운데이션에 등장한 셀던 박사의 심리역사학 개념.
우주 공리는 아시모프의 로봇3원칙.
나노물질을 이용한 우주 엘리베이터 논의는 아서클라크 할배의  fountain of paradise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구..

그리고 지구를 지킬 카미가제 공격대 찾아서 알카에다 방문한 자들이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이야기하는 거 정말 SF 팬들만 아는 이야기잖아... ㅋㅋㅋ 대개 소설 많이 읽은 사람들이 소설 창작도 하는 법이라지만 유독 SF 장르는 팬이 작가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거 볼 때마다 한식구같은 정겨움이 생김 ㅋㅋ

본 주제인 삼체 문제의 경우, 가위/바위/보 간단한 조합이지만 세 명이 경기를 할 때 예측할 수 없듯이 삼체의 랜덤니스가 정말 그리 예측불가능한 것인가??? 일단 이런 의문이 생기고 나니 소설 속 관계가 뭐든지 삼체로 보임 ㅋㅋㅋ
삼체행성을 추종하는 분파들이 셋으로 갈라지고 나서 서로를 견제하고 지배하려다 공멸하려는 것이나
삼체행성과 지구, 또 다른 지능형 행성의 관계 또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나...
둘이 아니고 셋이 되었을 때 랜덤니스가 폭주하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 산재함...
 

얼릉 3권이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구먼.. 이건 영어본이 아니라 반드시 한자어를 살린 번역본으로 읽어야 한다구 ㅋㅋㅋㅋ

 


#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민음사, 2017

 

K 편집자가 엄청 칭찬하면서 이런 컨셉의 책을 기획해보자고 해서, 도대체 어떤 책인가 하고 추석 연휴에 읽었음.  페미니즘을 '쉽게' 생활언어로 풀어쓴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함...  두께는 엄청 얇지만 내용은 묵직함...


그러나 한편 뭔가 찜찍한 기분이 사라지질 않았는데...
도대체 뭐가 싫을까 한참을  생각해보니 책의 화자가 나한테 반말해서 싫은 거였음 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나는 상점 입간판이나 미디어 광고에서 반말하는 것도 다 싫어함 ㅋㅋㅋ

독자의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조카 토끼한테 읽어보랬더니,
와 정말 유전자의 힘인가???

내용은 너무 좋은데 이렇게 이랬어 저랬어 대화투 말투 싫다고 해서 깜놀 ㅋㅋㅋㅋㅋㅋㅋ

너랑 나는 유전자의 1/4밖에 공유하지 않았는데 왜 이러는 거야..

 


# 인류의 기원 (이상희, 윤신영)

 

인류의 기원 - 난쟁이 인류 호빗에서 네안데르탈인까지 22가지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인류의 기원 - 난쟁이 인류 호빗에서 네안데르탈인까지 22가지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이상희.윤신영
사이언스북스, 2015

 

 

인간 중심주의와 진보로서의 진화 개념, 혹은 사뢰구성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의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함. 허나, 그런 자들이 책 한 권 읽는다고 생각을 바꿀거 같지는 않음 ㅋㅋ

근데 그러다보니 내 입장에서 그닥 흥미진진하지는 않았음 아마도 직전에 Sapolsky 책을 읽어서 그럴수도 있고, 이미 익숙한 이야기들이 많았던 탓일까...

본문 중에 인간의 수다가 입으로 하는 (동물들의) 그루밍이라는 말 너무 기발하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수다에도 권력이 있다는 점에서 딱히 적절한 메타포같지는 않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글항아리, 2018

 

번역이 후진 건지, 원저자의 개그코드가 괴랄한 건지,  뭔가 유머에 반어법이라고 썼는데 재치가 2프로 부족 ... 어리둥절하기만 함 ㅠㅠ  게다가 후기에서는 갑지기 진지한 모드로 농담을 수습해서 더더욱 어리둥절

막연히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던 북유럽 국가 ㅡ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위덴 (엄밀히 말해 스칸디나비아는 노 덴 스만 포함) ㅡ 사람들 사이의 역사적 문화적 차이와 서로간의 인식, 관계에 대해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나 전반적으로 아쉬움 ㅠㅠ

다른 나라는 잘 몰라도 최소한 최근 아이슬란드에 다녀오고 현지 작가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면, 예컨대 그곳 사람들이 요정에,집착한다는 이야기나 발효 상어요리 이야기는 너무 관광객스러운 피상적 소개라 어리둥절.. 혹시 내가 가보지 못한 다른 나라 소개도 이런건 아닐까 의심이 ㅠㅠ

 

그래도 내용 측면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핀란드 사람은 해야할 일을 꼭 하기에 핀란드어에 미래시제가 없다는 말 인상적 ㅋ 근데 좀 무서움 ㅋㅋ

전반적으로 북유럽 사회가 고립되고 동질적 문화를 공유해온 고막락 사회라는 해석에 매우 동의하나 일본 같은 고맥락 사회와 어찌 다른지는 잘 모르겠음.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이나 작동의 기제가 뭔가 다를거 같은데 말이지 ㅠㅠ

또한 이민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줌.  본국의 전통과 문화를 버리고 이주 국가의 소위 현대적 문화에 동화하라고 당연히 강제해서는 안되지만 젠더 불평등이나 종교 강요 같은 이슈들은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용인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말여....  노르웨이에서 추위와 어둠을 견딜 수 없다면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 것처럼 성평등을 견딜 수 없다면 함께 살기 어렵지 않겠냐는 노르웨이 사람의 말에 백퍼 공감함

스위덴의 극우 스웨덴민주당에 대해서 그리 낙관적으로 평하지 않으면서도 우려를 표했는데, 이번 총선에서 뙇 ㅠㅠ  스웨덴을 저비로운 전체주의로 평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할지 잘 모르겠음.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 자율성을 가져갔다지만 남은 자율성과 자유란 게 결국 부유해질 혹은 가난해질 자유라면???  특정 사회적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국가와의 공적 관계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게 난 부럽기만 한데? 심지어 저자도 후기에서 이 자율성을 행복의 중요한 요소로 언급함 ㅋ 왜 오락가락인지 모르겠네

하여간, 가봐야겠음 ㅋㅋㅋㅋ 남의 말 못 믿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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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공연_밀린 숙제 (2)

 

# 앤트맨과 와스프 (페이튼 리드 감독, 2018)

 

 

마침 개봉날 오프라서 뜻하지 아니하게 쿠폰으로 감상... ㅋㅋ 기말고사 끝나고 왔나 남자 중학생들과 단체 관람 ㅋㅋㅋㅋ
자 이 이야기는 먼 옛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해 내려오는 세 효녀에 관한 것이올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무시하는 아빠를 믿어주는 귀여운 딸 피넛, 정체불명 폭발사고에 과학자 아빠가 날아가는 걸 두고 도망가지 않다가 양자(?)에 노출되어 불치의 고통에 시달리는 고스트, 아빠에 대한 미움을 극복하고 엄마 찾아 몸을 불사르는 용감한 딸 와스프 ㅋㅋ 바로 이들이 세 효녀라오 ㅋ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소소하고 무해한 개그가 맘에 들었음. 세 얼간이의 케미 폭발에다가 능청스러운 앤트맨의 연기가 찰떡 궁합. 진실의 약 ㅋㅋㅋㅋ

게다가 여캐들이 멋짐이 끝내줌. 고스트 완전 간지에다가 와스프 역의 에반젤린은 인터뷰도 멋짐 ㅋㅋ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양자 차원의 세계에서 뭘 먹고 살았는지 수십년을 버티고 중력에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 와스프 엄마가 멋지게 나이든 미셀 파이퍼였던 점도 좋았음. 과연 이들이 어떻게 인피니티 워로 망한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뭔지 모르면 다 양자역학으로 퉁치는 게 좀 웃기긴 했음.. 이건 거의 마법 ㅋㅋㅋ

 


# 여우락: 잠비나이 [정형과 비정형] (국립극장 하늘극장)

 

포스터이미지

 

작년 여우락에서 잠비나이 놓치고 블랙스트링 보면서 별 아쉬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올해 잠비나이가 다시 나온다니 티켓팅에 도전....

오오오... 공연에 가서 정신이 확 깨버림
이건 거문고와 해금으로 연주하는 슬래시 메탈!!!
와 거문고 연주자에게 반해버렸음 ㅋㅋㅋㅋㅋ 커넥션에서 거문고줄 막 긁어댈 때 야 진짜 ㅋㅋㅋㅋㅋ

음반으로 듣던 게 이런 거였구나!!! 담에 공연 있으면 꼭 보러가야겠음


그나저나 공연 전에 해신탕 너무 천천히 먹어서 다 못 끝낸 게 넘 아쉬움 ㅋ

 


# 창극 흥보씨 (명동예술극장, 국립창극단)

 

포스터이미지

 

이자람 명인의 작창이라는데 뭔가 극이 자꾸만 산으로 감 ㅋㅋㅋㅋ
제비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외계인 등장해서 빵 터짐 ㅋ
그리고 흥부놀부에도 출생의  비밀 ㅋㅋㅋㅋ 역시 한국 드라마에는 빠질 수 없지!!! ㅋㅋ
뭐 상관없이 너무 흥겹고 즐거운 한마당이었음

 

# 베놈 (루벤 플레셔 감독, 2018)

 

 

지구란 매력터지는 곳...
옵티머스 프라임이나 베놈..... 그들은 이방인에 불과했음에도 아름다운 행성 지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음... 지구인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음 ㅋㅋㅋㅋ

나 진짜 이렇게 영화 개연성이 산으로 가는데도 헛웃음을 지으며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톰 하디의 원맨쇼 ㅋㅋ 아우 지못미...  아마도 세계 곳곳 톰하디의 팬들이 울면서 이 영화를 보고 있을 듯... 그러니까 이렇게 흥행이 되는 거지. 정말 다른 배우가 했으면 진작 망해도 폭삭 망했을 영화 ㅡ.ㅡ


심지어 미쉘 위리암스의 재능을 저런 식으로 낭비해도 되는 건가 나는 정말 죄책감마저 들었음

이 영화의 교훈은... 지구를 사랑하는 외계생명체, 정념에 사로잡힌 천재과학자, 좌충우돌 기자 (혹은 형사) 이 세 조합으로는 히치콕이 되살아난다 해도 정신 멀쩡한 영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사실.... 그런 면에서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은 (물론 인터스텔라 흑역사가 있기는 하지만) 진짜 겸양의 미덕을 지킬 줄 아는 양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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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공연_밀린 숙제 (1)

#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감독, 2018)

 

 

 

이게 무슨 호러무비나 스릴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죽을 것만 같았음... 이 아이들 환경이 너무너무 위험하다고... ㅜ.ㅜ

많은 이들이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빈곤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있는 매직캐슬 주민들의 삶은  칼날위의 그것....
예쁜  보라색과 핑크로 가렸지만, 그 뒤에는 빈대가 창궐하고 부엌도 없는 부유하는 삶의 공간이 있을 뿐이라고.. 한발짝만 나서면 차가 달리는 고속도로에, 정말 악어가 나오는 습지가 있고, 마약중독자들이  버리고 간 아지트가 있는 곳.... 그 곳에서 아이들이 위험천만한 삶을 천진한 모습으로 즐기고 있어....

무니의 천연덕스럽고 거침없는 귀여움에 반해버렸지만,
이 예쁘고 씩씩한 어린이의 20년 뒤 모습은 그대로 엄마의 삶을 벗어날 수 없겠지... 그저 가슴이 답답...

바비 아저씨라는 단 한 명의 정신 멀쩡하고 따뜻한 어른마저 없었다면 그곳은 그냥 지옥도였을 것...

국내 영화수입사에 의해 쇼룸이 운영되었다는 걸 알고 너무나 식겁함....

멀리 도로를 스쳐지나는 디즈니랜드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예쁜 색조로 포장된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저 조악학) 이 세계를 이렇게 예쁘게 추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ㅜ.ㅜ

 

 

# 말뫼의 눈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극단 미인)

 

포스터이미지

 

놀랍게도 대표이자 연출가 김수희 대표가 직접 쓴 희곡에 기반한 작품.  어쩐지... 작업복 입은 아재들 한 트럭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마초의 도시에서 여성의 눈으로 삶을 재구성하고 있음

배우들의 연기에 후덜덜....
그리고 신파가 아니어서, 모든 인물들에 서사가 있고 복잡성이 잘 살아 있어서 좋았음.
다들 먹고사니즘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남아 있는 모습을 자연스렇게 잘 그려남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미치는 줄알았는데 우연히도 같이 본 3인 모두 부산 출신이라 어찌나 좋아라들 하는지... 어쩐지 나만 소외된 느낌이었다구... ㅡ.ㅡ

 

 

# 창극 심청가 (명동예술극장, 국립창극단)

 

포스터이미지

 

대한민국에서 이 스토리 모르는 사람 한 명도 없을텐데...
다들 어찌나 몰입하면서 보는지 정말 깜놀... 심봉사 눈뜨던 순간에 관객들 정말 한마음으로 진정 감탄하며 소리쳤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안숙선 명창의 그 작은 체구에서 넘쳐나는 흥과 절창에 반해버렸고
심봉사 역 소리꾼 아자씨 풍체에 살짝 놀람 ㅋㅋㅋ 아니 저 몸피는 탐관오리?  풍상에 젖은 심봉사라 하기에는 너무 풍채가 좋으시잖아?
나중에 알게된 충격적 진실은 ㅋㅋㅋ 심봉사 역을 맡은 유태평양 소리꾼이 무려 92년생... 92년생 ㅋㅋㅋㅋㅋㅋㅋ 황후 맡은 이소연배우보다 어리잖아 ㅋㅋ

사실 이런 구전문학 판소리야 워낙 판본이 여러개고 스토리도 지방마다 조금씩 달라서 뭐가 정답이라 할 수도 없고, 또 시대상에 따라 스토리도 조금씩 바뀔텐데...
딸자식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나 인신공양 부분이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졌다는 인상...
심봉사의 애틋한 딸 사랑에 어쩐지 울 아빠 생각도 나고, 또 인당수에 심청이를 바친 상인들의 회한과 죄책감이 설득력 있었다고...
잠깐 등장했지만 뺑덕어멈의 자유분방한 삶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ㅋㅋ 척 보고 혹시나 했는데 찾아보니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헤큐바 역을 맡았던 김금미 배우님 ㅋㅋ

예나 제나 종교는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악질 ㅋ

 

 

# 손없는 색시 (남산예술센터, 아트스테이지 산)

 

포스터이미지

 

이리도 참신할 수가!!!
그야말로 경계를 알 수 없는 환상 속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음.
사람이 나와서 인형을 움직이는 게 빤히 보이는데도 그게 묘한 설득력이 있더라니...

그런데 문제는 드라마가 산으로 감 ㅋㅋㅋㅋㅋㅋ (실제 내용에서 주인공들이 산으로 가기도 했음 ㅋㅋ)

 


# 가오갤2 (제임스 건 감독, 2017)

 

 

개봉 당시 놓쳐서 못보다가 뒤늦게 감상

난데 없이 사라졌던 아빠가 나타나서 천지창조 보여줄 때부터 이거이거 뭔가 괴이하군 ㅋㅋㅋㅋㅋㅋㅋ
와 그루트 제대로 밉상으로 자랐네 그려.. 그래도 결정적 한방이 있어.... 로켓은 점점 더 멋있어지고 ㅋㅋㅋㅋ
욘두 스토리는 뭔가 찡하지 뭔가....

가부장 복고 영화인가 했는데 아빠 미친 놈으로 나오고 점점 더 엉망진창으로 가는 스토리가 맘에 쏙 들었음 ㅋ

 


#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루소 형제 감독, 2018)

 

 

아이맥스 관에 자리 기다리다 순식간에 상영작 바뀌면서 엉엉...
뒤늦게 한 떼의 휴가 나온 군인들과 단체 관람했지 뭔가... ㅡ.ㅡ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딸바보 공리주의자 자연인'의 범우주적 민폐 스펙타클 ㅋㅋ

근데 딸도 꼭 큰딸만 예뻐하고 둘째딸 차별함... 이런 경우 꼭 나중에 늙어서 둘째딸과 곤란한 처지에 처함 ㅋ

영화에서는 무수한 인간과 히어로들이 낙엽처럼 죽어나가는데,
그 와중에 초능력과 특수장비 없이도 일당백하는 블랙위도우의 능력에 새삼 깜놀...
그리고 좌충우돌 토니스타크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미성년자 스파이더맨 케어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가오갤 무리 앞에서는 그의 방정맞음조차 조선 선비급이라는 걸 깨달음 ㅋㅋㅋ

아무래도 우주 최강자는 '토끼' 로켓과 중2병 그루트 ㅋ

청소년은 그렇게 책임있는 존재가 되어간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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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바보원정대_대단원

hongsili님의 [아이슬란드 바보원정대_11] 에 관련된 글.

 

# 2018/06/17

 

일찌감치 짐 챙겨서 셔틀버스 타고 헬싱키 공항으로 이동.. 와 그 작은 공항에 사람 대박 많아서 진심 깜놀함.. 정말 아이슬란드가 핫플레이스이기는 하구나 실감.....
그리고 공항에서 엄청 기괴한 풍경 목격했는데, 대합실에서 수박 1/4분면을 먹고 있는 승객이 있더라구ㅋㅋㅋㅋ 내 눈을 의심. 아니 어떻게 시큐리티를 통과한 거지????  아직까지도 미슷헤리...

돌아오는 항공편에서 '월터 미티의 시크릿 라이프' 다시 보니까 기억이 새록새록.... 동반했던 책 나머지 부분을 읽으며 슬렁슬렁 까먹기 전에 여행 기록도 정리....

 

# 여행의 동반자

 

이번에 들고간 책은 아이슬란드 작가가 쓴 일종의 에세이인데, 생활, 안전과 관련한 유용한 팁 뿐 아니라 아이슬란드가 처한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 갑자기 성장한 관광 산업이 아이슬란드에 가져다준 고민과 대응, 그리고 여행자들에게 부탁하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니 왜 이렇게 관광지에 울타리 하나 없고 화장실이 부족한가, 숙박 요금은 어쩜 이렇게 비싼가 처음에 불만이 없지 않았는데, 이게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음. 관광객들의 부주의한 행동이 아이슬란드 자연과 사람들에게 어떤 해악을 남기는지, 그래서 아이슬란드 사람이 관광업의 성장에 양가적 감정을 갖게 된 것도 충분히 알게 됨.... 예컨대 관광객이 조난 당해서 민간구조대가 한번 뜨면 2백만원 청구한다고 해서 황당하다고 욕했는데, 알고봤더니 이곳은 소방/구조대가 완전히 자원봉사 기반으로 운용되고 정부의 돈도 받지 않음... 그런데 관광객이 폭주하면서 도저히 이런 방식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민간 서비스 회사가 따로 만들어졌다 함...

2008/09년 경제위기 이후 아직 회복이 안 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에 문제의 핵심에 있었던 정치인, 자본가 누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속상한 사연도 알게 됨... 최초의 의회를 둔 민주주의 국가에, 여성인권 수준이 가장 높은 복지국가이지만 이들 또한 지구촌 여느 곳과 다름없는 문제점들에 직면하여 골머리를 썩고 있다구.. ㅡ.ㅡ


책에 소개된 관광객들의 어처구니 없는 질문 몇 개 옮겨봄 ㅋㅋ 이런 질문은 대개 세계의 중심국가에서 온 철모르는 관광객들이 던진 것으로 짐작 ㅋㅋ


• Which American state does Iceland belong to? (세상에 미국이 중심 ㅋㅋ)

• How many slaves died building this? (asked about the continental rift at Þingvellir) (여기가 미국인줄 아남?)

• Is Iceland a third-world country? (진짜 황당)

• Is there a hospital in Iceland? (진짜 황당2)

• What month is it now? (September.) Oh, you also have September? (이 정도면 미친 거 아님?)

• How long does it take you to drive to Europe? (오마이갓)

 

• What is the best time of year to see both the northern lights and the midnight sun? (제 정신이냐)

• What time do they turn the waterfall off in the evenings? (asked at Seljalandsfoss) (어이 상실1)

• Does the waterfall also run during the night? (asked at Gullfoss) (어이 상실2)

• Which came first, the moss or the lava? (어이 상실3)

• Are those horses warm-blooded? (asked about Icelandic horses that stay outdoors in the winter.) (나 이거 진짜 빵터짐 ㅋㅋㅋ)

 

이거 말고도 아이슬란드 바에 가면 엘프같은 백인금발 여성과 쉽게 사귈 수 있을 거라는 헛소문도 있다는데, 작가는 실로 어이없어 함 ㅋㅋㅋㅋ 여성인권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 와서 뭔 개소리들을 하는 거야....   관광객 진상 짓도 상상 초월 ㅋㅋ 아 진짜 나 같아도 관광객이 싫어질 듯...  뭔가 작가의 나즈막한 한숨이 느껴지는 듯.....

그동안 여행에서 주로 러프가이드나 론리플래닛 같은 가이드북만 봤는데 이렇게 현지 생활인이자 작가가 쓴 에세이 겸 안내 책자도 참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너무 구경꾼으로 왔다가지 않도록 여행자에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네는데, 세계 시민으로서 거창한 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의바른 방문객의 모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며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줌...

 

# 물가, 물가...


그나마 경제위기 전에는 노르웨이, 스위스가 물가 1등이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아이슬란드가 1등...

기념품 샵에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음. 냉장고 마그네틱은 한 개에 7-8천 원, 주먹만한 조약돌 장식 하나에 4만원, 양털 품질이 좋다고 스웨터 사면 좋다 해서 보니까 좌판에 늘어놓고 세일하는게 25만원.... 와 제정신이냐구..  양말은 혹시 좀 싼가 하고 봤더니 또 4만원이야. 내 운동화가 3만원인데 이게 무슨 일이야 ㅋㅋㅋ

그 와중에 회박사는 무엇에 홀린 듯 돌을 4만원 주고 샀음... 돌 4만 원 ㅋㅋㅋ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거야...
하지만 내가 총무를 맡으면서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서, 오히려 걷은 돈이 남는 믿지 못할 일이 현실에서 벌어짐 ㅋ 다들 그렇게 먹을 거 안 사준다고 욕하더니만 돈 남았다고 또 쾌재를 부르네 ㅋㅋ
 

 

# 후회

 

후회스러운 것은, 사진 좀 잘 찍어보려고 힘들게 캐논 오두막 빌려왔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오호 통재라...
선글라스 끼고 쬐그만 뷰파인더 보며 찍었더니만 심도와 밝기가 엉망진창 ㅜ.ㅜ 심지어 초점도 안 맞아... 아니 초점 안 맞는 사진 진짜 오랜만에 찍어봄..  선글라스 도수도 안 맞아가지고.. 어흑....

역시 아이폰 카메라만한 게 없는 건가.. ㅜ.ㅜ  다음 여행에서는 이제 DSLR 의 로망 완전히 버리고 아이폰으로 귀의해야겠다고 결심함....  아이폰 렌즈셋트나 장만해야겠음...

 

# 이제 끝

 

여행 다녀온지 어언 두 달이나 지나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기록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사실 여행 마치고 바로 2주 후 토론토 출장 가서, 해외 출장 첨이라는 우리 노조 조직국장 데리고 나이아가라 폭포 나들이함... 나는야 6월 한 달 전 세계에서 폭포 제일 많이 본 여자 ㅋㅋㅋㅋ 이게 무슨 일이냐구....


그리고 바로 지난 주에 그토록 여행 내내 나를 괴롭게 했던 원고는 책이 되어 나오고..  여행기록 블로그 정리보다 책이 먼저 나오다니 뭔가 충격임 ㅋㅋㅋ

사실 지난 1월에 일본 견학(?) 갔다 온 기록, 봄에 월출산 다녀온 것도 아직 에버노트에만 있다고... 하 ~

어쨌든 바보원정대 회원 여러분.. 모두 무탈하게 다녀와서 다행이고, 댁들 덕분에 즐거웠소이다 ㅋㅋㅋㅋ

앞으로 농번기 휴가는 사절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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