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뮤니님의 ['대안'의 중요성에 대하여..] 에 관련된 글.
꼬뮤니님의 주장에 거의 동의하면서, 그런 대안과 소통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적으로 "철저하지 못한" 활동가다 보니(공부하겠슴다 ㅡㅡ) 세련되게 표현은 못하겠으나
몇 가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있는데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고 나열해보면
* 그런 필요성과 함께, 그럼 "상대적으로 나은" 민주노동당의 "정책"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도 단순히 "주류 언론의 왜곡,외면"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까, 일반 대중의 보수화등으로 그냥 얘기하면 되는 건가, 민주주의의 퇴보와 파시즘의 창궐이라는 표현으로 끝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사실, 민주노동당의 "다른" 내용들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유사한" 것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닐까, "내용"이 아닌 "방식"에서.
* 어쩌면 대안의 "마련"과 "소통", 그리고 "실천"이 분리된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닐까. "대안"조차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으로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활동가는 대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존재, 일반 대중은 그 대안을 소비하는 주체인건가. "대안"을 마련해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보면 "소통" 그 자체가 "대안"인 것이 아닐까 소통을 통해 대중이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갈수는 없는 걸까, 그게 맞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지금의 온라인/오프라인 환경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조금만 더 현실화하면 불가능이 아니지 않을까
* 대안이 상품으로 생산된다는 말에는 (이게 대단히 위험한 생각일수도 있는데) 두가지 의심이 들어있는데, 첫째로 "활동권력"의 다른 활동가에 대한 착취 구조가 은폐되고 있고(활동가는 대안 생산노동자), 또하나는 활동가들이 스스로가 만드는 "대안"으로부터의 소외 - 스스로 대중과 분리시킴으로서 - 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자체로 재밌는 활동, 각자 시스템에서 협력하되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과연 충분히 하고 있는 것일까.
* 철지난 매트릭스에서, 완전한 세상을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을 위해 일부러 불완전하게 가상세계를 만들고, 그 세상을 유지하는데 오히려 "해커"들의 혁명 운동을 활용한다. 결국 활동이라는 것이 진정한 변화를 위한 더딘 걸음을 내딛지 않고, 현실의 한계를 핑계삼아 미루면 결국 그것은 질서에 복무하는 역할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대안 그 자체도 대중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대중과 활동가의 분리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다.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은데 또 새는 분위기.. ㅡㅡ 특히 한미FTA같은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통한 접근 - 활동가의 총집결, 헌신적인 활동으로 집중적인 생산과 선전 활동 - 으로는 한계가 있는게 아닐까.
"활동의 전문화"를 경계하고 대중과 "소통"을 통해 어설프고 서투를지라도 모두가 할 수 있는 방식의 활동을 만들어 가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