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모델 한국적용 가능할까?
한겨레신문 2004년 10월 22일자에 실린 시민과 세계의 특집 '한국 자본주의 개혁논쟁'과 관련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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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 한국적용 가능할까?
‘시민과 세계’ 특집 ‘한국 자본주의 개혁논쟁’
한국 진보진영에게 스웨덴은 이제 새로운 ‘러시아 혁명’이다. 20세기 말, 진보를 꿈꾸었던 이들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논쟁을 한번씩은 거쳐야 했듯이, 21세기 한국사회의 미래를 말하는 대부분의 사회·경제적 논쟁은 거의 예외없이 스웨덴이란 스펙트럼을 거쳐 분화된다. 그 체제에 대한 긍정·부정부터 시작해, 어느 대목을 어떻게 인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함께 녹아있는 화두다.
참여사회연구소가 펴내는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편집인 이병천·홍윤기) 최근호(제6호)는 스웨덴의 사회협약 모델에 대한 새로운 논쟁을 소개한다. 진보진영의 유력한 경제학자인 이찬근 교수(인천대)와 신정완 교수(성공회대)는 ‘한국 자본주의 개혁논쟁’이라는 특집기획을 통해 스웨덴 모델의 한국적 접목의 길을 살폈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
“재벌자본보장-국민고용창출, 대타협 가능하다”
참여연대와 대안연대의 재벌개혁 논쟁을 접한 이들에게 이찬근 교수의 논지는 비교적 익숙하다. ‘국민경제의 민주적·자주적 발전대안 모색’을 기치로 지난 2001년 발족한 대안연대의 정책위원인 이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미국식 자본시장 개방이 오늘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본다. 국내 자본시장을 잠식한 외국인 주주의 이익창출을 위해 국내 우량기업이 고용·투자 창출을 포기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재벌개혁을 위한 외국자본의 역할을 긍정하는 참여연대의 입장도 비판한다.
이 교수는 <시민과 세계>에 기고한 글에서, 발렌베리 재벌의 기업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높은 소득세와 고용창출 등을 얻어낸 스웨덴 좌파정부의 경험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다만 그는 “미국의 과잉패권주의와 자본시장의 폭주라는 엄혹한 현실에 비춰볼 때, (스웨덴 모델의) 원형적 적용은 불가능하다”며 절충적 형태인 ‘경쟁적 사민주의 또는 사회적 자유주의’를 한국판 제3의 길로 제시했다.
“국내의 보수진영(대자본)과 진보진영(노동) 간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것”이 그 핵심이다. 실물경제와 유리된 금융부문, 지배권을 위협받는 재벌자본, 고용전망을 상실한 국민대중, 정책적 운신의 폭을 잃은 정부 등의 처지가 “한국판 사회적 대타협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결국 대타협의 고리는 재벌자본의 지배권 보장과 국민대중의 고용창출인 셈이고, 이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스웨덴을 적극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비상임연구위원이기도 한 신정완 교수는 “재벌총수들의 소유지배권을 인정·보호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스웨덴 모델을 활용하는 것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가 보기에 스웨덴이 거대금융가문의 소유지배권을 인정한 배경은 한국의 재벌개혁논쟁과는 그 맥락이 다르다. 스웨덴 사민당은 ‘생산수단 소유의 사회화’라는 사회주의적 문제의식 아래, 기업소유의 사회화를 단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의 계급간 세력관계를 고려할 때, 재벌총수의 소유·지배권 보장을 핵심고리로 삼아 계급타협을 이룬다면 동아시아적 발전국가주의만 전면화되고 유럽식 사민주의는 극도로 부차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겉으로는 사회협약을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론 재벌의 소유지배권만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
“재벌총수 소유권 보장은‥고용창출 큰 도움 안돼”
신 교수는 “대안연대가 주장하는 재벌총수의 소유지배권 보호와 국적자본 인정은 재벌과 정부 간의 타협일 수는 있지만, 노동운동까지 포함하는 계급타협으로 간주될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거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론 고용창출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게 그의 비판이다. 그의 글에선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꾸준한 역량강화”의 절실함을 제기하는 맥락에서 스웨덴 사민주의가 등장하는 셈이다.
‘제3의 길’ 찾아라
한국은 지금 자본주의 대안 논쟁중
‘스웨덴 논쟁’은 한국사회의 미래좌표를 밝히려는 노력과 잇닿아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진보·개혁진영의 17대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뚜렷한 전망을 갖지 못하는 현실이 이런 논의를 촉발시킨 셈이다. 아직 이렇다할 성과는 없지만, 여러 맥락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대안 체제’에 대한 논의가 학계에서 진행중이다.
이병천 교수(강원대)는 <시민과 세계> 최근호에서 ‘시민자본주의’의 개념화를 시도했다. 이 교수는 ‘시민적 사회원리’와 ‘시장자본주의 사회원리’의 (갈등적) 접합을 현대사회의 중심축으로 본다. 이제 그것은 “성장·효율·경쟁의 물신체제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시장 주주자본주의의 헤게모니로 귀결”되고 있다. ‘제3의 민주적 시민사회 이념’은 결국 배제되고 있는 또다른 축인 시민적 사회원리의 복원에 대한 기획이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정치학·경제학·사회학적 영역을 하버마스·폴라니·마르크스·아렌트 등의 이론을 통해 가로지르고, 일본형 기업사회와 미국형 시장사회, 그리고 독일·스웨덴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살핀 뒤, “시민적 대안은 (유럽식) 사회적 복지시장경제의 경계를 반성적으로 진화시키는 것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런 모색을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비판하는 견해도 있다. 전현준 <말>지 편집위원은 최근 인터넷 <디지털 말>에 기고한 글에서, 참여연대·대안연대·민주노동당 등이 제기한 한국자본주의 개혁론을 일일이 비판하면서 “근본모순을 해결하려는 진지한 대안논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련의 대안논쟁과 관련한 ‘스웨덴 신드롬’이 “시급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초조감, 신자유주의적 광풍에 대한 무력감, 사민주의에 대한 상상적 판타지, ‘새것 콤플렉스’에 의한 언론의 이슈 따라잡기적 속성, 그리고 개혁적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전 편집위원의 문제의식은 최근의 ‘대안논쟁’을 자본주의 체제 근본에 대한 비판으로 상승시키자는 데 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한국산업사회학회(회장 이종구)도 오는 22일부터 이틀간 중앙대 대학원에서 ‘글로벌시대 자본주의 유형과 한국사회’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이번 학술대회의 한 분과토론은 ‘민주화·세계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적 체제 모형 연구’에 할애돼 있다. 이 토론의 사회를 맡은 조현연 교수(성공회대)는 “그동안 추상성 높은 이념적 논구로는 대안체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서구의 경험은 우리의 교과서가 될 수 없다”며 “한국적 맥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진하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4/10/0090000002004102119015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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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사민주의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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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4 06:15
* 새벽길님의 [스웨덴 모델 한국적용 가능할까?] 에 관련된 글. 지난번 한국에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복지국가레짐과 건강수준의 관계에 대한 글을 발표하긴 했었지만, 스웨덴을 한국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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