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페북에 2005년 12월 'EBS 스페이스 공감' 공연실황에서 불러워진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꽃다지 비합1집 수록) 동영상을 보고 생각나서 이전에 네이버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다. 원래 글 중에서 친구에 대한 얘기를 쓴 부분을 뺐다.
요즘도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있을까? 이 노래도 20년이 넘은 노래다. 내가 학부 다닐 시절로 따지면 60년대에 나왔던 고전인 셈인데, 여전히 나에겐 새롭다.
http://www.youtube.com/watch?v=n-OrSm1SJ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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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1 03:04
지난 일요일 비정규직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민지네 깜짝 콘서트 [비정규직과 함께 어깨동무]가 있었습니다. 명인님이 공연에서 많은 수고를 하셨지요.
거기 나왔던 노래들이 모두 좋았지만, 특히 저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공연이 거의 끝날 즈음에 명인님이 불렀던 것으로,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라는 곡이었습니다.
작년 12월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간부교육 때 처음 대면할 수 있었던 진눈깨비님이 제가 좋아했던 '명인'이라는 가수임을 알고 엄청 좋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은평지구당 숙소에서 날새서 뒷풀이를 하면서 명인님이 육성으로 라이브를 하였는데, 그 때 불렀던 노래가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였습니다.
명인님의 라이브곡을 들었으면 좋은데, 없어서 대신 원곡을 올리면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아래 글은 예전에 [새벽길의 노래이야기]라는 이름으로 6년 전쯤에 올렸던 시리즈 중의 하나를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노동자노래단 4집 "민중연대 전선으로"(1991)
-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1991년 노동자노래단 4집에 실렸다가 그 후 꽃다지 1집에 실린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조호상 글, 김성민 곡, 조동익 편곡, 김태언 노래)는 1990년 제3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우수작으로 뽑힌 조호상 님이 지은 같은 이름의 시를 노래로 만든 것입니다. 상당히 오래된 노래이죠.^^ 그 때 전태일문학상은 민중문학계에 나름대로 권위가 있어서 많은 작품들이 응모를 했었고, 저도 그 중 초기수상작들은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1989년 제2회 소설부문 수상작인 안재성님의 [파업]이나, 1994년 제6회 보고문학 부문 수상작인 하종강님의 [항상 가슴 떨리는 처음입니다]가 그렇습니다. 물론 그 이후 제가 고시공부하면서 이런 쪽에서 멀어지고 말았지만요.ㅡ.ㅡ;; 조호상 님은 이 후에 민족문학작가회의 노동문학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라는 4권짜리 장편 소설을 썼고, 또한 동화집 [연오랑 세오녀]를 쓴 동화작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시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는 당시 제가 방위을 받던 시절 구독했던 주간 [노동자신문]에 실려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전자공장의 노조위원장인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시로 쓴 것이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동자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있다가 학교도 다니고 잘 살게 되리라는 꿈을 안고 따르던 이웃의 목사를 따라 상경한다. 하지만 목사는 '나'를 부려먹기 편한 식모 부엌데기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뒤늦게 안 '나'는 그 집을 뛰쳐나와 구두약공장에 들어간다. 구두약냄새에 시달리며 쉬는 날도 없이 하루에 열넷, 열 다섯 시간씩을 넘게 일하다가 옮겨가는 곳이 전자공장, 여기서도 '나'는 첫날부터 불량이 났다고 욕지거리를 당하고 뺨을 맞는 곤욕을 치른다. 이때 동료들이 편을 들어 주면서 '나'는 생전 처음 친구도 사귀게 되어, 자취방에서 함께 밥도 해먹고 놀러도 다닌다. 그러다가 자취방에서 함께 모여 공부를 시작하고 이것이 마침내 노동현실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다. 그리하여 '나'는 노동자의 싸움에 앞장을 서게까지 되고, 결국 '아무도 가라 하지 않는' 이 길을 걸어 지금 푸른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여 법정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비록 실재했던 인물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나'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과정의 묘사가 약하며, 극적인 사건이나 반전이 꼭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더 절실하고 긴박한 상황의 설정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평을 얻었다(제3회 전태일문학상 심사평 중에서).
이러한 내용을 시로 만들었으니 상당히 절절했겠지요. 이에 바탕하여 주간 [노동자신문]에 연재된 만화도 감명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노래가 실린 꽃다지 1집에는 지금도 많이 불리워지는 좋은 노래가 많습니다. 민들레처럼, 전화카드 한장, 고귀한 생명의 손길로, 바위처럼 등이 그것이지요. 아직도 그 명성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쩌면 민중가요의 기반이 상당히 약해졌음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꽃다지 1 "수선전도" -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제가 좌절하고 흔들릴 때마다 저의 중심을 지키게 하는 노래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아마 명인님도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를 불렀을 테지요. 제가 가끔씩 민중가요를 흥얼거리거나, 노동자의 삶과 진보정당에 대해 얘기를 하면, 그 나이에 아직도 철이 안들었냐는 표정으로(이름이 철인데... ㅡ.ㅡ;;) 저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기야 제가 이 글을 썼던 90년대 후반 당시에는 현실 사회주의권도 붕괴되고, 남아 있는 중국이 거의 자본주의나 진배없이 흘러가고 있으며, 또한 북한도 봉건왕조의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진보정당이 설 전망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인식이 타당할 수도 있었겠지요. 또한 변혁의 전망은 아득하고 말이죠.
민주노동당이 나름대로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현재에 있어서도, 당이 흔들릴 때마다, 진보진영 내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소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현실가능한 진보를 찾자고 하면서 80년대 말의 소시민적 의식이 담긴 민중가요를 부르고 자족합니다.
하지만 분명 현실에 모순은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이 있습니다. 자본가들의 탄압은 좀더 세련되게, 또한 심화되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타당할까요? 글쎄... 과연 누가 철이 든 것인지...
시간강사 신분이고, 학교에서는 계약직 연구원이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라 할 수 있지만, 저에게 노동자라는 것은 아직도 관념적으로 다가옵니다. 학위논문을 쓰는 입장이기에 학생이라는 규정력이 더 강하고요. 앞으로 노동자의식을 가진, 제대로된 노동자가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최소한 제가 배웠던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사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을 한다면, 이 노래가 주는 함의는 분명하리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올 노동해방의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을 다짐하면서...
아래 글은 도서출판 [녹두]에서 1993년 펴낸 이영미씨의 [노래 이야기주머니]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987~89년 그 때는 정말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민주노조들이 만들어지고 전국이 노동자들의 목소리로 들썩들썩했다. 그러나 1990년 이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정부와 자본가측의 대응이 달라졌고 노동자들은 새로운 대응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새로운 대응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태까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던 노동운동은 갑자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형편 없이 깨지는 싸움이 많아졌고 그나마 화끈하게 싸움을 벌여보는 일도 드물어졌다.
이럴 때 노래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투쟁적인 행진곡은 재미가 없다. 심지어 지겹고 꼴도 보기 싫어지기도 한다. 싸우자, 나가자를 외치는 노래들은 마치 강요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투쟁적 행진곡이 퇴조하는 시기인 것이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조호상 시, 김성민 작곡)는 바로 이렇게 투쟁적 행진곡이 퇴조하는, 운동 정체의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이 시기를 헤치고 나아가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의지가 담겨 있는 노래로, 이러한 반추가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다. 혹시 내가 한때 기분으로, 누군가의 선동에 휘말려서 이 힘든 길로 빠지게 된 게 아닐까 하고 되돌아볼 정도로 지금은 힘이 들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봐도 자신은 누구에게 속아서, 누구의 강요에 의해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목적지를 정하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매순간 매시기, 노동자로서 옳다고 생각한 것을 해왔을 뿐이다. 그런 지금 나는 바로 맨 앞 선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되돌아갈 수 없고 지금 이 고통은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래서 클라이맥스에서 누가 이 길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고 다시 다짐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그 길이 결국은 노동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함으로써 결국 그의 반추는 새로운 다짐으로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이 노래가 지난 몇 년 간을 또박또박 반추하는 느낌을 주는 것은, 찬송가나 가곡 분위기가 나는 이성적이고 차분한 악곡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대학가에서 널리 불렸던 장조 서정가요의 전통을 잇고 있다.
참좋다 님께서 비정규직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민지네 깜짝 콘서트 [비정규직과 함께 어깨동무]에서 불리워진 노래를 민지네에 올려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명인님이 부른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를 뽑아내어 올립니다. 노노단 4집에 실린 노래보다 더 좋네요. 다만 볼륨이 조금 작아요. 참좋다님과 명인님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르고 있었는데, 소리타래의 음반 [일어서는 민주정부]에도 이 노래가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실려 있더군요. 이것도 좋습니다.
명인 -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소리타래 -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내게 투쟁의 이 길로 가라하지 않았네
그러나 한걸음 또 한걸음 어느새 적들의 목전에
눈물고개 넘어 노동자의 길걸어 한걸음씩 딛고 왔을뿐
누가 나에게 이 길을 일러주지 않았네
사슬 끊고 흘러넘칠 노동 해방 이 길을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
조호상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고
일러 주지 않았네
어쩌면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은 길
어쩌면 내가 가다가 다 가지 못할 길
누가 가라 하지 않았네
그러나 떨쳐 한 걸음
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길
이 길을 가라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네
그러나 또 한 걸음
아무도 아무도 나를
싸움의 한복판으로
가라 하지 않았네
그러나 한 걸음
누구도 말리지 못할 길
아무도 이리로 가라고 권하지 않았네
아무도 나를
푸른 하늘
붉은 해만 타오르는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
그리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는 여기
적들의 목전에 와 있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에
그러나 나는
여기까지 왔네
갑자기 환히 트여 눈이 부신 꽃무더기
그날이 보이는 길목에
어느새 나는 다다랐네
눈물고개 넘고
노동자의 길을 걸어
싸움의 세상을 가로질러
누가 나더러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단지 세상이 나를 이리로 보냈을 뿐
삶이 나를 이 길로 보냈을 뿐
흘러넘치는 세상의 길
노동계급의 가슴팍으로
한 걸음씩 딛고 왔을 뿐
한땀 한땀 적들의 사슬을 끊고
어느 순간
한꺼번에 흘러넘쳐
쓸어버리기 위해
여기까지 몰려왔을 뿐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는 않았네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는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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