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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 생일 날

훈이 생일 날

 

훈이는 95년 3월 12일 태어났다. 기억하기론 8.5삭 동이다.

뭐 그리 세상을 일찍 보려고 발버둥이 치더만 양수가 터져서 119호출.

 

119왈 혹 인큐베이터가 필요할 수 있는데 부천은 마땅한데 없다고, 구로 고대병원가자고 한다.

선택 여지가 없다. 구로가서 제왕절개.

 

와 놀랍다. 이게 사람인가? 다행히 건강해서 인큐베이터 신세는 면했다. 하지만 머리엔 주사바늘이 꽂혀있다. 그 자국은 지금도 남아있다. 시간 지나면서 사람꼴을 하더니만 별 탈없이 잘 자라 주었다.

 

물론 크고 작은 여러가지 병을 섭렵 완치, 지금은 이상 무.

 

언제적인지 모르지만 훈이 생일 날, 마눌이 동영상 찍은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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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산행

주왕산 봄 산행

 

3월 1일 조선민중의 총궐기를 뒤로 하고 나는 주왕산에 오른다. 내가 언제 국경일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있었던가? 반국가 신념! 하지만 당시 일제의 압제에 떨쳐일어섰던 민중을 생각해본다.

 

여전히 뒤골은 땡긴다. 수많은 농성장, 연휴을 맞이하여 농성장 방문 요청을 째고 나는 산에 간다. 몸과 마음은 무겁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즐겁다.

 

이를 시샘하듯 어제부터 비가와서 새벽 5시 집을 나서는데 여전히 비가 내린다.

 

세종시청 6시, 우리의 희망녀는 미리 도착해있다. 희망녀는 나와 웃음녀를 태우고 출발, 나는 주무시고 둘이서 조잘 조잘, 10시 10분 주왕산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도중 휴게소에서 희망녀가 직접만든 샌드위치로 아침을 맞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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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등산코스다. 주왕산-후리메기-3폭포 들려서 원점 회귀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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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폭포, 오늘의 산행팀, 희망녀 나 웃음녀 3명이다. 원래 팀은 6명이다. 복술이가 목디스크로, 웃음녀남편이 근무로, 저기 보령녀도 빠졌다. 희망녀는 음지를 지향한다. 그녀는 사진을 찍지않는다. 오늘은 나의 블러그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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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러그써야 한다고 사진찍자고 요청, 희망녀가 핸드폰으로 찍기 시작합니다.

 

2g폰인 내가 sns교육을 받고 아이폰없이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블러그 만들었다. 이후 문제는 사진을 어떻게 찍느냐이다. 아이폰을 살까 디카를 사야하나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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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인증샷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 하여 석병산이라고도 하며, 신라의 왕족 김주원(金周元)이 머물렀다 하여 주방산(周房山)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이곳에서 수도할 때 이 산을 주왕산이라 부르면 이 고장이 번성할 것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전한다.(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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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폭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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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이 병풍바위, 우측 가운데가 급수대다. 내가 서있는 곳은 3,2,1폭포지나고 기암절벽을 지나서 무장굴가는 도중에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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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에 보이는 것이 무장굴이다.

주왕굴은 비로봉과 촛대봉 암벽 사이의 협곡에 있으며, 마장군에게 쫓긴 주왕이 이 굴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무장굴(武裝窟)은 주왕이 무기를 저장해두었던 곳이라 전해지는데, 굴 속은 큰 암석으로 가로막혀 10m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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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사, 산행후 찍은 것. 뒤에 보이는 바위가 기암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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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타고 주산지 구경하러 왔다.

숙종(1720년)때 만든 저수지, 물이 한번도 마른적이 없다고 한다. 물속에서 자라는 왕버들로 유명하다고 한다.

 

달기약수로 삶은 닭백숙 먹으로 달기약수탕이 있는 동대구식당에 갔다. 경상도에서 먹은 음식중에 가장 맛있었음. 예전에 안동에서 안동찜닭먹었는데 맛없었다.

 

달기약수탕은 주왕산관리공단 입구에서 서북쪽으로 약 8㎞ 지점인 청송읍 부곡리에 있으며, 철 이온이 함유된 탄산수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 조선시대 철종 때 발견되었으며, 약 300m 간격으로 하탕·중탕·상탕이 있다.(브리태니커)

 

 생각해보니

오늘의 산행은 주왕산대담(對談)이었다.

산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심지어 차안에서도 주저리 주저리.  속내와 인생사가 곁들어진 대담이  산행을 압도하였다. 들어주고 이야기하고, 그래서 산행이 즐거운가 보다. 사람이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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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울 마눌이 좋아하는 동지

페이스북을 열었다. 박준동지가 친구 요청을 해서 수락했다.

 

울 마눌이 좋아하는 동지라서 수락했다. 그러면서 기억나서 찾아본다.

 

박준동지는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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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 마눌이 박준동지에게서 받은  싸인이다. 언제 10년 동희오토 일일주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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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도적들의 향연

인사청문회 - 도적들의 향연

 

임꺽정이 기생 소흥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면서 하는 말

“내가 도둑놈이 되구 싶어 된 것은 아니지만, 도둑놈 된 것을 조금두 뉘우치지 않네. 세상사람에게 만분의 일이라두 분풀이를 할 수 있구 또 세상 사람이 범접 못할 내 세상이 따루 있네. 도둑놈이라니 말이지만 참말 도둑놈들은 나라에서 녹을 먹여 기르네. 사모 쓴 도둑놈이 시골가면 골골이 다 있구 서울오면 조정에 득실득실 많이 있네.”

 

예나 지금이나 조정은 도적소굴인 것은 변함이 없다.

다른 것은 지금은 녹을 먹여 기르기 전부터 훨씬 도적질을 잘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정에 들어가는 것은 누가 더 도둑질을 잘했는 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상감은 대도 김종훈을 수입해와 한국의 도둑들에게 미국의 대도 기술을 이전하려다 무엇이 뒤틀렸는지 어그러졌다. 한국도적들은 기술이 신통치 않다고 여겨서 내쫓은 것인지 아니면 종훈이가 하챦은 도적들에게 뭔가를 보여줄려다가 실력이 뽀롱나서 도망간것인지 모르지만. 확실한것은 미국버전이 한국버전하고 호환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조선 속담에 ‘토종이 최고여’라 했다. 미국속담에도 있는데 기억이 없네...

 

백정은 조선시대에 사람취급을 못받는 계층이다. 그런데, 백정 임꺽정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세상 사람이 범접 못할 내 세상이 따루 있네” 라고 하네. 이 대목에서 난 빡 야마가 돈다. 짐승 취급받는 임꺽정이가 ‘자신의 세상’이 있다고 은근 슬쩍 자랑하는데, 나는 이것이 없네. 난 짐승만도 못한 존재. 이것이 오늘의 현실인가?

 

조선시대에도 존재한 청석골, 지금 청석골은 있는가? 없다. 그래서 야마가 돌고, 삶을 되돌아 본다. 노동조합이 청석골인가? 아니다. 물론 현체제에 저항하는 것은 같다라고 볼수 있지만 실 내용은 다르다.

 

청석골은 현존 가치를 모두 부정하면서 지배세력에 저항한다. 노동조합은 현존 가치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저항한다고 한들 인정받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죽기전에 청석골같은 공동체, 모든 현존 가치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질서로 운영되는 공동체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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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 가족 여행1

제주 3박4일 가족여행 1편

 

가족여행은 매우 어려운 여행이다. 굳이 가족여행을 해야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하게된다.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아비와 남편 그리고 가장이라는 호명에서 나는 길 잃고 해메는 외로운 인간일뿐이다.

 

제주 3박4일 인지 4박5일 인지 가물하다. 2008년 여름 휴가때 여행이다.

가게된 직접적인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다. 촛불항쟁이 가져다준 혜택?이었다. 또한 가족여행한지 오래라, 애가 다컷다고 싫다하고, 마눌과 일정이 엊갈려서 가족여행은 싶지 않았다.

 

하필 제주일까?

나의 고향은 제주도 신양리(지금은 섭지코지가 있는 곳)다. 하지만 국민학교 4학년때 육지와서 제주를 잘 모른다. 형이나 누나 만큼. 육지와서 중3 겨울방학때 만장굴 구경한것이 전부다.

 

신혼여행은 흑산도로,  결혼하니 제주갈일이 많아졌는데, 마눌이랑 제주갔지만 구경은 한번도 못해봤다. 그래서 제주를 선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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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훈이는 중1이다.  자동차 마티즈에다 5인용 텐트, 그리고 먹거리를 가득채우고, 배를 타고 제주에 갔다.

3박4일 동안 잠은 텐트에서, 밥은 1끼외는 직접 지어서 먹었다. 우리 삶은 그랬다. 밖에 나가서 사먹는 것은 익숙치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마눌은 구질구질하게 사는게 이제는 싫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텐트, 코펠과 차비 등 여행경비 100만원정도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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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에서 내리고 첫 방문지, 아마 용두암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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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랑 콩순이(08년 3월입양, 당시 7개월 말티즈),  용두암지나서 협재 해수욕장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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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돼지다 내가 어렸을 때 화장실에는 이렇게 돼지가 있었다. 내가 똥을 누면 돼지는 와서 받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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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이 다 제작하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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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구 이제야 마눌님이 나타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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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찮게 들른 곳이다. 여행 안내도 없었던 곳이지만, 제주 여행객에게 반드시 추천하고 싶다. 제주의 일상을 제주돌을 가지고 만들고 있다.

 

제주1박은 중문해수욕장이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 끝낸다. 밤12시 잠잘시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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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

훈이네 가족이야기

 

훈이네 가족은 모두 4명이다

 

막네는 콩순이, 암컷 말티즈 08년 3월 입양(당시 2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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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순이는 훈이가 중1(08년)때 원해서 자기가 기르겠다고 졸라서, 거금을 주고 데리고 왔다.

물론 애미하고만 이야기 된 것이고 애비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항상 애비는 찬밥이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훈이가 콩순이를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애미가 집안에서 똥 오줌을 다 받아주더니,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불을 포함하여 아무데니 오줌 똥을 내 싸 질르니 두 손 들더니만, 넘 갖주라고...

 

찬밥덩이 내가 아무리 동물이라고 그런 법이 어디인냐고 발끈 정의감이 솟아서... 사고쳤네

지금까지 아침 저녁으로 밖에 데리고 나가 배설을 시키고, 한이불에서 함게 잠을 자고 있어요.(마눌하고는 별거중이고 콩순이랑 동침) 
 

 

첫째는 훈이, 올 해 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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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8월 훈이 중3, 제주여행 중 배안에서.. 키가 벌써 애미보다 크다.

 어느날 애비보고 팔씨름하자고 도전하드만...  얼마나 쫄았던가 지면 어찌하나.. 다행히 애비가 이겨서 체면은 살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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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1월 부천, 박태일(현재대학2년)집에 놀려가서 형이 신발 사줬다고 자랑한다고 핸펀으로 보내온 사진.

그이후로 훈이는 신발이 이것뿐이다. 애비가 더러운 신발 신지말고 새로 사준다고 했더니 메이커아니라고 싫다고 하여 현재 나이키만 신고 다님. 결국 애비가 단 한번 세탁해준적 있음. 에고 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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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 방이다. 양말, 음료수병, 그릇 온갖것들이 널려 있다. 언제나 치울려나... 이제는 지쳐서 치우라는 이야기도 않한다. 훈아 방이 넘 드럽다. 그럼에도 외출할때는 온갖 치장은 다한다. 겉모습에 속지 말자.

 

마지막으로 울 가족 넘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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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년 김장하다가  술 먹더니만 저러고 한 잠 주무시고 계시다. 이날 깨우지는 못하고 오후6시에 깨워서 김장을 마져했다. 김장을 가장 늦게 마친 한해였다. 그래도 이때가 좋았다. 12년은 바쁘다고 아애 김장도 않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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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퇴근하니 누워있어 핸펀으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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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눌이 나 입으라고 만들어 준 바지입니다. 집에서는 항상 이 바지를 입고다니고 잠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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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입주했는데, 마눌이 이렇게 이쁘게 커텐을 만드고 그것도 천연 염색으로, 집을 이쁘게 꾸며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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