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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39회 – 길게 이어지는 겨울의 추위를 견디면서...

 

 

 

1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날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인 교육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갈까 말까 잠시 고민하기는 했지만

교육을 이수해야만 신청한 사업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단단히 무장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10여 분을 걸어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를 기다리며 다시 10여 분을 견뎌야했습니다.

다행히 햇볕이 나고 있어서 그나마 견딜만 했습니다.

제 시간에 따뜻한 교육장에 도착해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제게 도움이 되는 교육이어서 집중해서 교육을 들었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갔는데 버스 대기시간이 20분이더군요.

이번에도 햇볕이 비치는 곳이어서 견딜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을 마시며 얼었던 몸을 녹이고는

동네 분이 선물해주신 동태를 넣어 찌개를 끓이고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 하우스 지붕을 닫고 열풍기를 점검했습니다.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편안하게 누워 tv를 보고 있자니

창밖에서는 매서운 바람소리가 들려왔고

하우스에서는 열풍기가 요란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더군요.

예전에는 열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사랑이가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가보다 하면서 심드렁합니다.

보일러가 틀어진 방안이 따뜻해서

웅크리지 않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사랑이를 보고 있노라니

제 마음도 편안해지는 겨울밤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너무 추워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대지’라는 고전영화였죠.

가난한 중국 농부가 하인 출신의 신부를 얻어 열심히 농사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대기근이 닥쳐와 먹고 살수가 없어 남쪽의 대도시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도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가다가

혁명의 불길이 몰아치면서 사회가 심하게 요동쳤습니다.

그 와중에 어느 부자의 귀금속을 속에 넣게 된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에서 다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 그들은 점점 땅을 넓히며 부를 쌓아갑니다.

그렇게 가난한 농부에서 대지주로 변해가면서 남편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일만 하던 그가 유흥을 즐기기 시작하고, 아름다운 여배우에 빠져 사치를 일삼고, 노동에서 멀어지더니 가족과 가까운 이들과도 멀어져갔죠.

 

따뜻한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영화를 보며

주인공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오래 전 성민이’이가 오래간만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오래 전 성민이 : 가난한 농부에서 대지주가 된 후 변해가는 주인공을 보면 추하지 않아?

 

성민이 :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

 

오래 전 성민이 : 아니, 그냥, 너 자신을 좀 돌아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성민이 : 지금의 내가 추해?

 

오래 전 성민이 : 그걸 내게 물어보면 안 되지. 니 스스로 생각해봐야지.

 

성민이 : 글쎄, 예전에 비해 변한 점은 많지만 지금의 내가 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오래 전 성민이 : 그러면 오래 전의 나는 부끄러워?

 

성민이 : 아니 전혀.

 

오래 전 성민이 : 지금도 많은 이들이 오래 전의 나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알지?

 

성민이 : 그럼.

 

오래 전 성민이 : 그런 그들을 너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어?

 

성민이 : 하고 싶은 얘기가 많기는 한데, 하지 않을래.

 

오래 전 성민이 :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 그들은 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성민이 : 나는 너를 존중하거든. 그래서 과거의 너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런 내 모습이 너는 어떻게 보여?

 

오래 전 성민이 : 그런 모습은 나도 존중해. 하지만 너랑 나랑 서 있는 자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성민이 : 이렇게 찾아와서 그런 얘기해주니까 고맙네. 너와 나의 그 거리가 좁혀질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항상 의식하며 살아가겠다고는 약속할게.

 

오래 전 성민이 : 사실 나도 불안정하고 모순덩어리이긴 한데, 내 미래의 모습이 슬프지 않았으면 해.

 

성민이 : 어, 나도 노력할게.

 

 

3

 

국민학교 때 분단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 학급에 50~60명이던 시절이라서 책상은 네 분단으로 나눠서 앉았는데 반장 밑에 각 분단마다 분단장을 뒀습니다. 군대식 편제였던 셈이죠.

국민학교 6년 동안 반장은 해보지 못했지만 분단장은 두 번쯤 해봤습니다.

분단장이 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인쇄물을 나눠주거나 과제를 걷을 때 분단장이 일을 도왔던 것이 전부였는데, 그 일을 하면서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권력이 주는 힘을 배우기 시작했던 거죠.

 

중학교 가서는 도서부장이라는 것을 두 번쯤 했는데 학급마다 있었던 도서함을 관리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권한도 권력도 별로 느껴보지 못했죠.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때, 반 투표에서 우연히 부반장으로 뽑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척 분 중에 다른 중학교 교감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분이 담임에게 제 얘기를 했었나 봅니다. 당시 비교적 어린 교사였던 담임은 높은 분의 청탁성 부탁을 받고는 조금 티 나게 저를 예뻐해 주셨고, 반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의 태도를 보며 저를 높게 쳐줬던 거죠.

그런데 부반장은 분단장이나 도서부장과 달리 반에서 해야 될 일이 많았고, 그에 따라 권한과 권력도 강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죠.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의 지시로 뭐가를 전달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제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주 사소한 문제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지시를 따르지 않는 그 친구를 고압적인 자세로 대했고, 그래도 잘 따르지 않자 따귀를 때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매우 당황했고, 주위에 있던 다른 친구들이 저에게 강하게 항의를 했었죠. 결정적으로 그 친구는 언어장애가 있어서 반에서 은근히 하위그룹으로 인식되는 처지였기 때문에 제 행동은 더 심하게 항의를 받았습니다. 결국 2학기 반장 부반장 선거에서 저는 후보에도 들지 못한 채 짧은 권력기간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워낙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공부만 하다 보니 특별한 권력을 맛보지는 못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초반에 새내기라고 귀여움을 받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에 예비역 선배가 돼서는 후배들 앞에서 은근히 권위를 드러냈습니다. 특히 여자 후배들 앞에서는 가부장적 권위를 마음껏 발휘하며 각종 성희롱이나 성추행들을 별 문제의식 없이 마구 저질렀고, 막판에는 심각한 성폭력을 저지르고 도망치듯이 학교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밑바닥에서 박박 기다보니 권한이나 권력을 누려보는 기회가 별로 없기는 했지만, 조직에서 자리가 잡혀가기 시작하자 일반 조직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은근히 지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부끄러운 기억으로 떠오르니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제가 가진 것도 없고 주위에 만나는 사람도 없어서 더 이상 부끄러운 짓을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히 권위를 내비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토박이라서 외지인들에게 우월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지...

나이가 많다고 어린 사람들에게 가르치려들지는 않는지...

젊다고 늙은 분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인간이어서 개들을 통제하려하는 것은 아닌지...

홀로 꼿꼿하다고 생각해서 세상 사람들을 비열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남자여서 여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지...

이제는 먹고 살만해져서 춥고 외롭고 배고픈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추워서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요즘, 저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김호철의 ‘흐르는 강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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