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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중인 피해 노동자 분이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금속노조 정유림 여성부장 을 만나게 된 것은 내가 문제를 제기하고 사내하청지회와 나의 대리인 권수정씨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던 날이다. 서울에서 보게 된 이 여성은 처음 본 날부터 따스한 봄 햇살과 같은 매력 있는 여성이었다. 처음 보는 나를 보는 눈빛이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조용하게 바라보면서 내 곁에서 끝날 때까지 지켜보던 여인이다. 짧은 커트식 머리에 아담한 체구 딱 내 맘속에 들어왔다. 그렇게 보고 다시 본 것이 내가 인권위 진정 냈다란 이유로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 함으로 해고 통보서를 받고 난 후에 아산공장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다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을 때에 답답하여 병원 복도를 나오다보니 여성부장이 찾아왔다. 괜찮으세요 하는 말에 그간 있었던 일이 서러워서 끌어안고 많이 울어버렸다. 보내고선 좀 창피했었다. 언니가 돼가지고 울었으니.. 성격이 차분하고 친절하며 조용한 여성이다. 아산공장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금속노조 김현미 부위원장님이 온다고 하면 유림이도 같이 오겠지 오면 얼굴 볼 수 있겠지하며 기다려지는 여성동지였다. 서울 상경투쟁에 다른 금속식구들이 한진이나 유성 때문에 정신없다는 이유로 잘 신경 못쓰고 있을 때 혼자서 끙끙거리며 이리저리 나름 애를 써 준다. 그런데 그 동안 시집을 갔다.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다. 속도위반으로 얼라를 가져버렸다. 점점 빠르게 배가 불러온다. 지금은 만삭이다. 내가 처음 봤던 그 청순한 이미지가 온대간대 없다 ㅜㅜ 지금은 몸매가 엉망이다ㅋㅋ 그래도 괜찮다. 한 번은 내가 뭐라고 했다. 언니한테 허락도 안 받고 아가를 만들었다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산후휴가를 들어간다. 서운하다. 뭔 날짜가 이라도 빨리 가는지. 되돌아보면 언니가 사랑을 받기만했지 해 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기도 하다. 10월이면 들어가는데 소식은 듣겠지만 언니 복직하는 것도 가까이서 봐야하는데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내 맘은 어여쁜 아가를 순산하고 산모와 아기가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내가 유림이한테 정이 많이 들은 것 같다. 그냥 다 이쁘다. 유림이 아기는 얼마나 예쁠까 기다려진다.
2010년 해고된 때부터 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는 금속 김현미 부위원장님 은 내가 서울 농성 시작한지 한달 반 정도 돼서야 그 분이 솔로인 걸 알게되었다. 이 분은 차가움과 따듯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처음 아산공장으로 금속노조 여성부위원장님이 온단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때만해도 노동조합의 조직을 모르던 나는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힘과 능력이 있다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여성위원장하면 호칭부터가 멋있고 권위가 느껴졌기에 이제나 될까 저제나 될까 이번에 왔다 가면 무슨 얘기가 나왔나 기대가 되고 하면서 믿고 여기까지 왔다. 가끔 농성장에 와서 밥을 사주곤 하는데 어느 날 내가 위원장님께 투정을 좀 부렸다. 9월이 되고 추석은 다가오는데 복직에 대한 소식은 아무것도 없고 날은 가을로 접어들어 아침 저녁으로 벌써 쌀쌀해지기 시작해서 그런가 내 맘이 조금씩 심란해지기에 연고도 하나 없는 서울 한 복판에서 추운 겨울을 텐트 속에서 나야하는 심란한 맘에 내가 물었다. 위원장님 무슨 소식 없나요, 저 여기서 겨울을 나야 하는 건가요 했더니, 그러게 나도 그 생각만 하면 잠이 안와.. 하신다. 나는 또 바로 내가 괜한 투정을 했나 싶은 맘에 그럴죠.. 나하고 수정이가 텐트 속에서 자고 있는데 위원장님이 잠이 안 오겠죠 그냥 추석이 다가오니 답답해서 그랬어요. 제가 믿을 데가 어딨어요. 아산에서부터 위원장님 믿고 왔잖아요.. 했다. 그래, 나를 믿었으면 끝까지 한 번 믿어봐. 모든 게 다 잘 될거야. 내가 선거에 당선이 안되더라도 당신 일만은 해결할 수 있어. 그러니 걱정말어. 하면서 그날도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가 아산공장 앞에서 단식하면 해결될 문제이기도하지.. 좀 빠르게 하던 그 말도 난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시대가 금속이 예저만 못해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에 믿으며 기다리련다.
김형우 부위원장 은 금속 남성 동지들 중에 가장 농성장에 많이 온다. 비정규직 담당자여서만은 아닐거라 깊이 한 번 생각해 본다. 노동자의 길을 아는 것이겠지. 농성장에 처음 온 날 무지 시끄럽단 생각을 했다. 뭐지 저 사람은.. 속으로만 그랬다. 충남지부 사무국장 차를 타고 조합원과 함께 집회장으로 모금함을 돌리러 가는 중에도 계속 노동조합의 실태와 조직도를 논하더니 갑자기 나에게 화살이 꽂힌다. “동지는 고향이 어디요?” “전준디요” “아이고 그랴요, 나도 전주인데 여기서 고향사람을 만나네요, 반갑구만요, 전주 어디에요?” “평화동이에요” 한 것이 첫 날의 대화이다. 그 때부터 자주 찾아와서 그나마 농성장도 지켜주고 노숙도 2번이나 치루었다. 추석이라고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왔다면서 씨익 웃는다. 한 여름에 자전거 타기며 걷기 대회며 공투단(공동투쟁단)이며 비지회(비정규지회) 당번으로 돌아다니더니 참 볼품도 없이 시커멓게 탔다. 까다롭지 않고 편해서 좋다. 내가 좀 많이 성질을 부렸다. 그래도 다 받아준 김형우 부위원장님께 이 글을 통하여 고맙단 말을 하고 싶다. 명절을 새고 오더니 맘이 심란하다고 한다. 인제 임기가 되어 전주공장으로 평범한 사원으로 고향으로 돌아간단 생각보다는 임기 때에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심란한 마음이 있으리라 미뤄 짐작해 본다. 현장으로 돌아가서도 열심히 싸울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형우 부위원장님 파이팅.
여성민우회 에는 참신한 인재들이 많은 것 같다. 크리스마스 퍼포먼스에는 예쁘게 색칠도하고 그림도 그려서 건물주 관리인들이 농성장에 늘어 놓은 화분에 붙여주고 갔다. 그런데 우리 몰래 새벽에 물에 불려서 떼 내느라고 고생 꽤나 한 것 같다.ㅋㅋ 나도 없는 날에 문화제도 성대하게 치러주고 물티슈도 한 박스나 주고 갔다. 지금까지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명절 전에는 기분 전환하라고 가격도 비싼 뮤지컬 티켓을 무려 4장이나 주고 갔는데 제목은 ‘빨래’다. 참 배려도 깊지.. 자리가 햇살 자리다. 한국민우회 여성사업장에는 빨래터가 있나.. 주부들은 빨래하는 것을 싫어한다. 궁금하다. 어떤 빨래인지.. 한국여성민우회에 무궁한 발전이 있길 바라며 고마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9. 14
혁명기도원 은 신학대 학생들의 지지와 작지만 단 한번도 건너뛰지 않고 매주 수요일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회를 준비하여 농성장을 방문하여 주니 감사하다. 복은 하나님께 받으시길.. 처음에는 집에 있을 때 수정씨에게 전화를 받았다. “언니가 없어서 내가 대신 기도하고 있어요. 너무 좋아요”라고.. 나는 처음 혁명이란 단어만 듣고 혹시 사이비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어서 다음에 온 (자칭) 기도원 원장이라고 하는 학생을 보고 신상 조사를 하였다. 살짝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조사를 해야 했다.ㅋㅋ 지금은 조촐한 가족 모임 같아서 너무 좋다. 요새 수정이가 혁명기도원 깃발을 만들어준다고 열심히 구상중이다. 또한 아직은 세상의 때가 덜 묻은 학생들이라서 신선하다. 며칠 전 여성가족부가 폭력을 써서 무력으로 미어낸 것을 알고 가난한 제정에도 전단지와 대문짝만한 성명서를 만들어와서 여가부산성에 붙였다. 처음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왔는데 주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신 모습이고 여가부와 경찰과 용역들은 너희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말씀이었다. (여가부 안에서 일하는 분들이 이 성명서를 보고 회개하면 좋겠다.) 오늘은 명절을 보내고 처음 맞는 수요기도회다. 아직 어린 원장께서 “자매님 오늘 제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하면서 “자매님의 눈 침침함을 도우려고 큰 글자 새 찬송가를 가져왔습니다”하며 웃는다.
예수님. 이 어린 순박한 청년의 기도가 하늘 아버지 보좌 앞에 상달되어져서 이들의 앞날이 열려지고 장차 이 땅에 죽어가는 수많은 뭇 심령들을 살려내는 크게 쓰임 받는 자 되게 해주시며 지금도 자기들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나라 곳곳에서 악행을 멈추지 않는 자본세력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구원받게 하는 그런 기도원이 탄생 되게 하여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명절 저부터 나의 농성장 텐트 앞으로 매일매일 신문이 배달이 된다. 집에서도 안보는 신문을 길바닥에서 보고 있다. 우리의 화끈남 김기식 동지 가 그래도 바른 말을 하는 경향신문사를 선택해서 배달을 시켰다. “누님 제가요 티비도 없이 농성장에만 계셔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실까봐 이런 짓을 했습니다”하면서 껄껄 웃는다. 생각이 꽂히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얼마 전부터 재능교육 농성장에도 보낸다고 한다. 덕분에 눈을 뜨면 아침에 신문을 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세안 후 신문과 함께 하는 모닝 커피는 죽여준다. 명절 때 과일이 많이 들어와서 사과 한 쪽도 같이 먹는다. 기식 동지 감사해요.
금속노조 에는 국제부장 이 있다. 이름도 예쁘다. 99일 문화제 끝나고 촛불문화제 티셔츠를 입고 왔는데 예뻤다. 그 자리에서 작은 꽃 티셔츠를 주고 촛불 소녀티를 바꿔 입었다. 나한테 잘 어울린다. 춥다고 이불과 옷을 가져와서 “언니 따듯하게 자요”한다. 문화제 끝나고 뒤풀이로 술 한 잔했다. 남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여성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버들가지처럼 가냘프지만 흔들리는 세상 바라이 불어와도 부러지지 않는 꼿꼿한 여인이 되었으면 한다. 혜원 씨, 파이팅이야!
나영 이가 요새 부쩍 살이 빠졌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는 일이 많은가보다. 쌍코피가 터지고 몸살이 나서 백일 때도 못 왔다고 한다. 에고 이팔청춘을 그리 바치고 우짜노 걱정이다. 그래도 언니를 보겠다고 추석 보내고 일 끝나고 오밤중에 찾아왔다. 귀여운 베개 2개를 가지고. 빈 손으로 와도 이쁘고 고마운데 언니의 바램은 우리 나영이가 세상 고단함에만 매이지 않았으면 해요.
명절 전날에는 농성장에서 미리 송편과 부침개를 먹었다. 유림이가 송편을, 사노위 용현 동지가 부침개를 가져왔다. 송편을 보니 정말 추석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유현경 동지가 제주 초콜렛 두 박스를 사 왔다. 아직 안 뜯었다. 얼마 전에 4차 희망버스 전에 퍼머를 하더니 살은 좀 붙어 보이는데 나이 들어 보인다. 그래도 퍼머가 더 낫다.ㅋㅋ 생머리보다는 퍼머가 좀 더 따뜻해보이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언제보아도 너무 부지런한 여성동지다.
99일 문화제에 참석한 동지가 침을 놓아주겠다고 한다. 원래 평소에도 물리치료는 받으러 가도 침은 무서워서 한의원 쪽엔 안갔다. 내일 오신다고 하기에 겁이 나서 명절 세고 오세요했다. 명절 때라도 결혼 안해서 별로 안 바쁘다고 그냥 오겠단다. 다음날 저녁에 제자 한 명을 데리고 침통을 챙겨서 오셨다. 다행이도 침탈된 뒤로 새로 장만한 텐트가 3인용이다. 3명은 가볍게 잘 수 있는 크기라서 아주 편하게 누워 침을 맞았다. 여의사인데다가 성격이 차분하고 꼼꼼하여 그런지 맘이 편해진다. 먼저 나의 체질을 파악하여 시술했다. 맞고 나서 정말 잘 맞았다란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뭉친 어깨가 통증 때문에 조금씩 아팠던 참이고 농성장에서 앉아만 있으니 벌써부터 무릎이 아프다. 나도 이런데 수정이는 얼마나 아플까란 생각이 든다. 별명이 춤추는 한의사란다. 고맙고 미안하고 감사했다. 자기가 도와주고 싶은데 도울 건 침을 놔드리는 거란 마음을 감사히 받았다. 내가 알기로 재능교육에 농성장에도 한의사님이 매주 월요일마다 오셔서 침도 놔 주시고 약도 지어 주신다고 들었다. 세상엔 자본가들 빼곤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춤추는 한의사님 꽃이불과 꽃베개 잘 덮고, 베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뭐라도 돕고 싶은데.. 언제 한 번 같이 춤춰요.)
9. 20
아침 일찍 몸에 냉기를 느끼면서 하룻밤을 넘기고 또 하루를 맞는 세상에 눈을 떴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아름답기를. 으래 그랬듯이 세면실로 가서 세안을 하고 가볍게 화장을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가을의 찬바람이 세게 불어서 텐트가 펄렁인다. 쓸쓸하단 생각이 든다. 한 쪽에선 조금의 틈새도 없이 입구를 막아버린 또 하나의 텐트 안에 어제 온 조합원 동지들이 아직 곤히 자고 있다. 텐트 주변 여기저기에는 어제 4시부터 준비하여 밤 11시가 넘도록 고대와 연대가 축제를 벌이고 달아 놓은 파랑 빨강 풍선들이 바람에 부딪히며 난리를 치고 있다. 그걸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그 뒤로 보이는 탐엔탐스 커피숍이 보였다. 온 몸이 추위를 느끼던 참에 갑자기 나는 서울 상경 투쟁 이후로 탐스를 옆에 끼고 살면서 한 번도 나 혼자 한 잔의 여유로운 커피 한잔을 못 마셔 봤구나 하는 맘이 들었다. 자 그럼, 서울에 온지는 백일이 넘었고 해고 된지는 오늘이 딱 일 년이 되는 날이니 나도 한 번 우아하게 커피 한 잔 마셔볼까 하고 들어가서 이름도 괜찮은 ‘아메리카노' 한 잔에 바나나 브라우니라고 하는 딱 한 조각 싸이즈의 케익 같은 빵을 시켜놓고 유리 너머로 텐트와 풍선을 바라보고 있다.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나는 그렇게 해고된 지 일 년째 되는 날 아침을 맞았다. 문득 커피숖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살짝 무릎이 시리다는 느낌이 들면서 나에게 침을 놔 주시는 춤추는 한의사님의 말이 생각났다. 아침저녁으로 꼭 두 번 씩 산책을 하라고. 걸으라고. 조금 있다가 청계천 주변을 한 바퀴 돌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시며 김기식 동지가 넣어주는 신문을 보다보니 시간은 어느 새 8시를 넘어서고 있고 늘 그랬듯이 정신없이 바쁜 서울 시민들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한 무더기로 떼를 지어 걸어오다가 조그만 입구로 쏙쏙 들어가 사라진다. 여성가족부 건물주 관리인 한 명이 이따금 씩 우리 텐트 주변을 살피고 들어간다. 생긴 것부터가 (재수가 없겠다.)
해고 일 년째 오늘은 피디 수첩에서 촬영을 하러 온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그것도 글로벌이라는 대기업 현대자동차 안에서 성희롱 피해자를 해고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그것이 일 년씩이나 되었는데도 해결 못하는 현대차는 이 건으로 인해서 자기네들 기업 이름으로 피디 수첩까지 와서 찍어 방송에 나가게 만드는 것이 정말 우스꽝스럽고 쪽팔리는지를 모른단 말인가. 초등학생도 알고 지나가는 개도 알겠고만 이런 치욕스럽기까지 한 일을 현대자동차는 해결 못하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중식 때 현대자동차 영업소 앞에서 전국 동시다발 일인시위가 있는 날이다. 지난 번에 한진 청문회 때문에 관심이 많이 안 모아진 것 같긴 한데 오늘은 다른 일과 겹치지 않고 대박이 났음 좋겠다. 지지의 글 때문에 스마트 폰이 마비가 되도록.ㅋㅋ 지금 이 순간 기도한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본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 성경 말씀 주님의 말씀처럼 오늘 한 날도 그런 평안을 제 맘속에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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